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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분석심리학

[C.G.Jung] Mind and Earth

C.G.Jung C.W 10 Civilization in Transition

 

 

마음과 대지 Mind and Earth (par.49-73)

 

 

# 마음에 대해  모르는 현대인

 

 

[49] ‘마음과 대지라는 표현은 약간 시적인 울림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마음(mind) 하늘(heaven) 영향에 지배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는 하늘의 것은 shen-soul(神신), 땅의 것은 kwei-soul(歸귀) 구분한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마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shen-soul(神신) 대신에 마음을 인과관계없이 창조적인 으로 가정할  있고, kwei-sou(l歸귀) 대신에 인과론의 산물 생각할  있다. 우리가 다루려는 주제는 후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적합한데, 그러면 마음은 대지환경의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적응 체계 (a system of adaptation determined by the conditions of an earthly environment)라고 이해할  있다. 인과론적인 관점은 편향될  밖에 없다는 것은 거의 강조할 필요가 없는데, 마음의 한쪽 측면 만이 인과론으로만 파악되기 때문이다. 다른  편은 여기서 다루는 주제에 속하지 않기에 다루지 않기로 한다.

 

[50] 마음(mind)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정신적mental or psychic’이라고만 하면 의식적인 것으로만 제한하게 된다. 이런 정의는 오늘날에는 만족스런 정의가 아니다. 현대의 정신병리학에서는 의식과 유사하지만 무의식적인 정신 활동 대해서도 많은 관찰을 해왔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있다. 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상황에서는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날  있다. 어두운 밤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경우로 비유하면 정신의 기능을 가장  이해될  있다. 밝은 곳이 의식이며, 어두운 곳이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현실이면서 영향을 끼친다. 빛을 비추는 방향이 달라지면, 의식이던 것이 무의식으로 가라앉고, 새로운 것이 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어둠으로 사라진 내용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간접적으로-주로 증상으로- 느끼게 된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증후 장애를 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에서 기술한  있다. 무의식적인 소질과 억제된 것은 실험적으로, 연상 검사를 통해 입증할  있다.

 

[51] 정신병리학적으로 고려해보면, 부분적으로 의식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인 정신 현상이 확장된 것이 마음인  하다. 마음의 무의식적인 부분은 직접 접근할  없으며, 무의식이 의식에 끼치는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무의식을 추론할 수만 있다. 추론은 ‘마치 ~~ 듯하다as if~’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분명하게 말할  없다)

 

#마음의 구조: 의식과 무의식, 원형

[52] 대지에 의해 조성된 마음에 대해 적절히 다루려면, 무의식의 특성과 구조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이것은 태초의 마음은 어둠 속에 있었는지, 단순히 환경에 대한 감각적 인식과 의식적 적응이었는지,  마음의 시초와 토대에 대한 질문이다. 이것은 의식 심리학에 속하며, 앞서 말했듯이, 의식과 정신을 동일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환하게 알려진 좁은 의식 영역에 비해,  정신은 훨씬 복잡하며 어두운 영역이다. 정신은 무의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53] 다른 논문에서 나는 무의식의 구조 조망하고자 했다.  내용물인 원형, 의식적 마음의 숨겨진 기초와도 같다. 다른 비유로 하자면, 좁은 의미로는 대지(earth), 넓은 의미로는 세계(world) 정신(psyche) 침전되어 뿌리를 내린 이다. 원형은 충동 체계(systems of readiness for action)이면서 동시에 심상이자 감정이다. 원형은 뇌의 형태로 유전된다(사실 원형은 뇌의 정신적 측면이다). 원형은 매우 강한 보수적인 본능이면서, 반면 본능적 적응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원형은 정신의 지하적(chthonic) 부분이며, 정신이 자연-혹은 만질  있는 , 세계- 닿아있으면서 가장 실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대지와 대지의 법칙이 주는 정신적인 영향은 이런 원시적 심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오래된 건물의 비유: 하부구조 밑에는 원형이 있다

[54] 이것은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문제이다. 원형   기능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선사시대 인류의 비합리적인 심리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유컨대, 상층부는 19세기에, 지상층은 16세기에 세워진 건물에서, 석조 기초를 세심히 살펴보니 11세기에 건설된 건물을 재건축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경우를 생각해볼  있겠다. 지하에는 로마 양식을   있고, 지하층 밑에는  상층부에는 신석기 시대의 도구를, 하층부에는 동물상(fauna) 발견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신의 구조를 묘사한 것이다. 우리는 건물 상층에 살고 있으며, 하층은 약간 오래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지표면 밑에 있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55] 이것은 불충분한 비유인데, 정신에는 죽어있는 유물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신의 모든 것은 살아 있으며, 상층인 우리의 의식은 살아있는 하부 구조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 건물과 마찬가지로, 하부구조 덕분에 의식이 유지될  있는 것이다. 건물이 땅에서 높이 솟아오르듯이 우리의 의식은 높이 서게 된다. 그러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어둠을 발견하게 되고 기반암(bed-rock) 닿게 되며, 거기서는 야생의 힘에 대항하여 싸우던 선사시대 사냥꾼을 접하게 된다.  시대의 인류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가득했다. 본능에 흔들리는 것은 견고히 발달한 의식과 양립할  없다. 원시인의 의식은 아이처럼 산발적(sporadic)이며 매우 제한적이다. 계통 발생학적 법칙에 따라 우리는 유아기에 인류의 선사시대 추억을 되풀이한다. 계통 발생학  개체 발생학적으로 인간은 어두운 곳에서 자라난 이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원형이 되었고,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원시적 심상이기에, 그것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여겨진다 하였는데,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거나 적어도 그렇게 지속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6] 그러면 가장 가까운 원형은 무엇인가?  질문은 우리가 원형 기능의 문제를 직시하게끔 해서 가장 어려운 핵심에 다가가게 한다.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대답해야 하는가? 아이의 입장에서, 혹은 원시인, 혹은 현대인의 의식에서? 우리는 어떻게 원형을 인식할  있는가?  가설에 의지해야  필요가 있는 때는 언제인가?

 

#원형의 영향을 짐작할  있는 : 밤의 공포를 예로 들어

[57] 촉발원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든 정신 현상은, 동시에 원형의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나는 제안하고 싶다. I would like to suggest that every psychic reaction which is out of proportion to its precipitating cause should be investigated as to wheter it may be conditioned at the same time by an archetype.

 

[58] 엄마를 두려워하는 아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아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든가,엄마가 학대를 한다든가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먼저 확인해야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공포를 느낀다면, 이런 경우 원형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류의 공포는 밤에 주로 나타나며, 꿈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이제 쫓아오는 마녀로서 어머니의 꿈을 꾸게 된다. 일부의 경우 이런 꿈의 의식적인 재료는 ‘헨젤과 그레텔민담(동화) 같은 것이다.  동화가 공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말았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런 것이 잘못된 합리화이지만,  이야기는 아이들의 공포를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마녀 모티브를 다룬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 항상 그래왔다. 이것이 민담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아이들의 야경증(night-terror) 계속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건이며, 항상 전형적인 민담 모티브를 통해 표현되어 왔다.

 

[59] 원시적인 ‘밤의 종교night religion’에서 취한 전설, 신화, 미신의 가장 유아적인 형태가 민담이다. 내가 ‘밤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마술적 형태의 종교인데, 어둠의 , 악마, 마녀, 마술사, 귀신 등과 접촉하려는 종교이다. 계통발생학적으로 고대의 밤의 종교가 민담으로 반복되듯이, 아이들의 공포는 원시적 심리(계통발생학적 유물) 재현되는 것이다.

 

[60] 현대 문명에서 사는 성인도 이런 공포를 겪는 것이 이상한 현상은 아니기에, 이러한 유물이 어떤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만 아주 심한 정도의 야간 공포(night-fear)만이 비정상이라고 여겨질  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공포가 생기는가? 단순히 민담에 나오는 마녀 원형으로 설명 가능한가, 혹은 다른 원인이 제시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심한 공포에는 특별한 원인이 있다: 비개인적인 아이의 심리

[61] 원형은 분명하고, 최소한의, 정상적인 정도의 공포를 유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비정상적으로 심한 공포에는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프로이트 근친상간 금지에 대해 억압된 근친상간 충동 공포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의 관점에서 설명한 셈이다. 아이들이 ‘근친상간 경향이 있다는 것은 전혀 의심할 것이 아니지만, 아이들의 독특한(sui generis) 심리도 지체없이 근친상간 때문이라고 하는 것에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아이들의 정신(child-psyche) 여전히 부모 정신, 특히 어머니의 마력(spell) 아래에 있으며, 어떤 점에서 아이들의 정신은 부모의 기능적인 부속물로 여겨진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이들의 개별 정신은 의식의 연속성이 확립된 , 나중에야 발달한다. 아이들이 자신을 3인칭의 입장으로 말한다는 것은,  관점으로는, 아이의 심리가 아직 비개인적(impersonality of his psychology)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62] 모든 유아적 신경증은 가장 먼저 부모의 심리부터 살펴야 하듯이, 나는 아이들의 근친상간 경향을 부모의 심리의 입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야경증은 부모의 ‘콤플렉스-취약부분complex-proneness)’ 주된 원인 되는데, 부모의 삶에 필수적인 문제가 무시되고 억압되었다는 의미이다. 무의식으로 들어간 것은 대개 고태적 형태를 취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고통스럽고 두려운 콤플렉스를 억압한다면, 마치 그녀를 쫓아다니는 악령-영국인들 표현으로 ‘찬장 안의 해골’-처럼 느낄 것이다. 이런 표현은 콤플렉스가 이미 원형적 힘을 획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령처럼 그녀 곁에 자리잡게 되고, 그녀는 악몽으로 고통받는다. 그녀가 ‘악몽-이야기 아이에게 읽어주든  읽어주든, 그녀는 아이에게도 전염시켜서 그녀 심리에서 나온 무서운 원형적 심상을 아이에게도 일깨우게 된다. 아마도 그녀는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에로틱한 환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는 그들 결혼의 증표이므로, 증표에 저항하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아이를 향하게 된다. 고태적 수준에서 이것은 유아-살해(child-murder)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는 아이를 잡아먹는 사악한 마녀가 된다.

 

[63] 어머니에서처럼 아이에게도 원형적인 표상이 잠재해 있을  있으며, 인류 역사상 태초에 생긴 이후 내려온 것들이 오늘날 다시 재현되고 있다.

 

# 가까운 원형: 어머니 원형, 아버지 원형

[64] 앞서 얘기한 원형의 예는 무작위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immediate) 원형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가장 가까운 원형은 원초적 모성상이다(primordial image of the mother); 모성 원형은 가장 가까이에 가장 강력한 경험으로 존재하고, 사람의 일생 중에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경험된다. 아동기의 의식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의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반면에 어머니는 원형적인 경험이다; 아이에게 어머니는 여성 개인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의미로 가득한 원형으로 경험된다. 살아가면서 원시적인 심상은 옅어지며, 개인적인 심상이라고   있는 의식으로 대체되어 간다. 하지만 무의식에서 모성상은 여전히 강력한 원시적 심상으로 남아있어서, 사람의  생애에 걸쳐 여성을 대할 때나 사회, 세계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끼치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는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기에, 의식에서는 알아채지 못한다. 이것을 비유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자가 결혼할  어머니를 닮았다거나 혹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우자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엄연히 실제적인 사실이다. 독일인들에게는 Mother Germania, 프랑스인들에게는 la douce France처럼 정치적인 장면 뒤에 가장 중요한 상이 있다. 편협한 지식인들만이 간과할 뿐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궁으로서의 교회(the all-embracing womb of Mother Church) 단지 비유적인 것이 아니며, Mother Earth, Mother Nature 마찬가지 사실이다.

 

[65] 어머니 원형은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하지만 의식이 발달하면서 아버지도 시야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여러 면에서 어머니와 대조적인 원형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어머니 원형은 중국의 (yin) 해당한다면, 아버지 원형은 (yang) 해당한다. 아버지 원형은 사람, , 국가, 이성(reason), 영혼, 자연의 역동성(dynamism) 등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조국Fatherland” 특정 공간에 있는 특정지역을 암시하지만,  그자체는 조용하면서도 기름진 어머니 지구(Mother Earth)이다. 라인강은 나일강처럼 아버지, 바람, 폭풍, 천둥과 번개이다. 아버지 원형은 “창조자이면서 권위를 나타내기에, 법이자 국가이다. 그는 바람처럼 전세계를 다닌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비현실적인 심상을 창조하는 자이자 안내하는 자이다. 그는 창조적인 숨결-영혼(spirit, pneuma), 아트만(atman)이다.

 

[66] 그러므로 아버지 역시 아이의 정신에 있는 강력한 원형이다. 처음에 그는 the father,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역동적인 신의 (God-image)이다. 살아가면서 권위주의적인 이마고는 서서히 배후로 물러난다: 아버지는 한계가 있는, 너무 평범한 인간으로 변한다. 반면 아버지-이마고는 잠재된 최대 능력까지 발달한다. 인간이 자연(nature) 늦게 발견한 것처럼, 그는 , 책임, 임무, 국가, 정신(spirit) 천천히 발견해나간다. 초기의 의식이 점점 이해의 폭을 넓혀가면서, 부모 인격의 중요성은 점점 약해진다. 아버지의 자리는 인간사회로 대치되고, 어머니의 자리는 가족으로 대치된다.

 

[67]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원초적 부모 이마고의 피할수 없는 손실의 대체물이라고만 한다면,  관점으로는 틀린 얘기이다.  자리에 있는 것은 단순한 대체물이 아니라, 부모 이마고를 통해 아이의 마음에 영향을  것과 부모가 혼합된 현실이다. 따뜻함, 보호, 양분을 주는 어머니는 따뜻한 난로, 피할 동굴, 오두막이면서 둘러싸고 있는 초목이다. 그녀는 미래를 준비해주는 들판이며, 그녀의 아들은 신성한 곡식, 사람의 형제이자 친구이다. 그녀는 우유를 주는 젖소떼이다. 아버지는 일을 벌리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며, 사냥, 여행, 전쟁을 하고, 뇌우처럼 나쁜 기분을 쏟아내고, 보이지 않는 생각의 명령에 따라 폭풍처럼 상황을 바꾸어버린다. 그는 전쟁이자 무기이며, 모든 변화의 원인이다; 폭력에 흥분된 황소이기도  반면, 무감각하게 나태해지기도 쉽다. 그는 도움이 되거나 해를 주는 모든 기본적인 힘의 상이다.

 

#의식이 확장되면서 나타나는 변화: 사라지지 않는 신비적 참여

[68]  모든 것들은 아이의  초기에 직접적인 immediacy으로, 부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부모 이마고가 점점 옅어지며 인간적으로 되어가면, 처음엔 배후에 있거나 미미한 영향을 주던 것들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뛰어노는 , 따뜻하게 해주는 , 추위에 떨게 하는 비바람은 모두가 실재가 된다. 이전까지 그의 어스름한 의식에서는 부모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안개가 걷히듯이, 대지의 물질과 역동적인 면이 드러나면서 자연 본연의 힘은  이상 부모의 가면을 걸치지 않은 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한 대체물이 아니라 좀더 높은 의식 수준에 상응하는 실재 것이다.

 

[69] 그럼에도 발달과정중에 무언가 잃어버리게 되는게,  무엇으로도 대체할  없는 부모와의 일체감이다.  감정은 단순히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심리학적 사실인데, 레비-브륄Leve-Bruhl 다른 문맥에서 신비적 참여(participation mystique)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시 이해되지 않는 표현인  말이 가리키는 사실은, 분석심리학  아니라 원시인의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호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한 상태(a state of identity in mutual unconsciousness) 의미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겠다. 동일한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동시에  사람에게 배열되면, 주목할만한 감정 반응인 투사가 발생하는데,  결과 서로 호감을 갖게 되거나 적대감을 갖게 된다. 어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내가 다른 누군가와 무의식적인 관계가 생기면, 나는 부분적으로 그와 동일해지며, 이러한 이유로 나는 불확실한 콤플렉스에  자신을 적응시키듯이 그에게 적응시킨다.

 

[70]  신비적 참여 부모와 아이 사이에 발생한다.  알려진 예를 들면, 계모가 자신의 딸과 동일시해서 사위와 결혼을  경우, 혹은 아들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버지가 아버지 자신의 바램을 채우기 위해 결혼이나 직업을 강요하는 경우를   있다. 아버지와 동일시 하는 아들도  알려진 예이다. 하지만 특히 어머니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연상 검사를 통해 증명되는 경우도 있다. 신비적 참여 무의식적 사실임에도,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에는  변화를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남자의 심리와 아버지가 죽은 남자의 심리에는 항상 어떤 차이가 있다. 부모와의 신비적 참여 지속되는 , 비교적 유아적인 삶의 형태가 지속될  있다. 신비적 참여 삶은 외부로부터 무의식적 동기의 형태로 들어온 것이기에,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런 유아적 무의식성 덕분에 삶의 짐이 가벼워 지거나, 혹은 가벼운 것처럼 느끼게 된다. 혼자인 사람도 혼자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혹은  명인 것처럼 존재한다. 상상속에서 아들은 그의 어머니의 무릎에 있으면서, 아버지로부터 보호받는 셈이다. 영속의 연결고리를 통해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어머니는 그의 젊은 남편(아들) 통해서 아버지를 회춘시킨다. 나는 원시 심리학의 예를  인용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근거자료는 이미 충분하다.

 

[71] 의식이 확장되고 강화되면서  모든 것은 약해지게 된다. 현실을 직면하면서 혹은 흐릿한 유아기의 세계를 뚫고 나가면서 확장된 부모 아미고는, 부모와의 무의식적 연결을 끊어버린다.  과정은 원시인의 성인식(initiation) 의례를 통해서 의식적으로 수행되기도 한다.  부모 원형은  때문에 배후로 물러나게 된다; 우리의 용어로 표현하면  이상 ‘배열되지 않는다.  대신에 종족, 사회, 교회, 혹은 국가와 새로운 종류의 신비적 참여 시작된다. 이러한 동일시는 일반적이면서 비인격적인 일인데, 무엇보다 무의식에 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만약 너무 무의식적으로 되거나 너무 솔직하게 사람을 믿으면(too guilelessly trusting), 법과 사회는 그를 재빨리 흔들어 다시 의식으로 돌아오게 한다. 하지만 성적인 성숙 역시 새로운 형태의 개인적인 신비적 참여 접하게 하는데, 부모와의 동일시 때문에 잃어버렸던 인격 일부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게 된다. 새로운 원형이 배열된다: 남자에게는 여성 원형이, 여자에게는 남성 원형이 배열된다.  두가지 상은 부모 이마고의 가면 뒤에 숨어있던 것인데, 여전히 부모 이마고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는 하지만  이상 숨어있지 않고 전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나는 남자에게 있는 여성적 원형에게 ‘아니마’, 여자에게 있는 남성적 원형을 ‘아니무스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72] 남자나 여자가 무의식적으로 부모 이마고 영향을 받을 수도록, 사랑하는 대상은 부모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대체자를 선택하게 된다. 부모 이마고의 영향이 지대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와 반대로 매우 정상적이면서도 흔한 현상이다. 실제로는 그래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고, 부모 이마고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개인의 삶의 영속성이 중단된다. 그는 그의 어린 시절과 어른의 삶을 연결시킬  없으며, 무의식적으로 아이 상태-신경증이 발생하기 쉬운 최적의 상태- 남아있게 된다.

 

[73] 어떤 면에서 아이는 부모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생물학적으로 훌륭한 자손을 얻으려면 새로운 혈통이 혼합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점이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지속성,  과거를 현재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단지 이런 방향에서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적은 것이 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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