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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펌] 안녕들하시냐고요? 저는 안녕합니다.

저는 안녕합니다.

최근 좌익적 사상을 조금 과하게 가진 지인들의 페이스북에서 일제히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글을 공유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어떤 대학생이 학교 대자보에 게시한 글이 파문이더군요. 내용을 요약한다면 몇 천 명의 근로자들이 일제히 직위해제되었고 송전탑 문제로 음독자살하는 주민들이 있는 이 뒤숭숭한 세상에 어찌 안녕한 당신네들이 안타깝다는 것인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안녕합니다.

 

우선 안녕히 잘 살고 있는 개인들을 안녕하지 못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그 심보들이 괘씸하군요. 직위해제된 근로자들과 음독자살한 주민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이지 그것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만들어 편안히 잘 살고 있는 일반인들까지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상천국은 없다.

우선 그들의 대자보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바로 글 전체에 깔려있는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입니다. 우리들 중 일부가 저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왜 너희는 고통받지 못하는 것인가? 같이 아파해 줄 수 없는 것인가? 네, 맞는 말입니다. 만약 공통체 중 어떤 사람이 아파한다면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지 수 천 만이라는 수 많은, 다양한 국민들이 살아가는 한 나라에서 통용되기 힘든 논리입니다.

 

예전에 제 글에서 "우리는 하나다" 라는 문구를 맹비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류가 지금껏 멸종하지 않고 보존되어왔던 것은 우리들 사이에 있었던 다양성 덕분이며 (비단 그것은 인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심지어는 바이러스마저 그 다양성이라는 축복덕에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개개인의 다양성의 인정과 타인과 나의 차이점의 인정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시작입니다.

 

다양성의 시작은 너와 나의 차이점의 인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차가운 논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몸 구조가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는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죠. 누구는 잘생기게 태어나고 누구는 못생기게 태어납니다. 누구는 선천적으로 키가 크고 누구는 선천적으로 키가 작습니다. 누구는 똑똑하며 누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인은 결코 성장하지 못합니다.

 

대자보의 내용은 마치 지상천국이 있다는듯 학생들을 현혹시킵니다. 마치 모두가 공평히 잘 살 수 있는 그런 천국이 이 나라에 실현될 것 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나라라면 말이죠.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북유럽의 선진국들마저 막상 들춰보면 결국 사람이 살고있는, 수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는 나라입니다.

 

부조리의 인정이 바로 혁명의 시작이다.

싸움의 기초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약함과 부조리를 부정한다면 싸움도 뭣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들과 2차세계대전 말 패망을 앞둔 일본군들이 그런 우를 범하였습니다. 기합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한 그들의 어리석은 생각이 기관총이 난사하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를 칼 한자루 차고,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뛰어들어 집단자살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세력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우가 바로 자신의 약함과 사회의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고 기합으로든 뭐든 해결하려는 똥고집입니다. 그것은 마치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대에 대항해 맨 몸에 칼 한 자루로 덤벼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 필리핀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존심 하나만으로 중국에 대항하려고, 자주국방을 외치며 국내 미군부대를 추방했었습니다. 그 결과 필리핀은 해군력으로 중국에게 비참하게 휘둘리고 있을 뿐이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차가운 머리로 계산하여 친미정책을 펼쳤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조리의 인정은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힘든 일일수도 있겠습니다. 특히나 단순한 권선징악을 내용으로 한 온갖 미디어들에게 노출된 지금 세대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세상은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표현되는 영화와 몇 권의 책으로 쓰여진 소설처럼 단순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선 수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있는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며 권선징악은 몇 개월,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 또는 몇 백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라 그들의 세대, 또는 그들 자식 세대도 악이 징벌되는 것을 못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도 모른채 깝치다가 죽어버리는 참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혁명을 원하시나요?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냉철한 머리로 사회의 부조리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시작입니다.

 

안녕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안녕합니다.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들을 돕고 그 댓가로 돈을 받습니다. 비록 지금은 1.5평 남짓한 조그만 고시원에 살고 있지만 밥도 굶지 않고 돈도 차곡히 모아 그토록 원했던 랜즈삽입술도 받을 것이며 내년에는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길 예정입니다. 비록 전체적인 피라미드로 보자면 사회의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차츰차츰 성장하는 재미는 연애보다도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습니다.

 

해고당한 직원들이요? 음독자살한 주민들이요?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때문에 저의 행복이 방해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불행 때문에 타인들마저 불행하진다면 그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가 말했던 것 처럼 국가란 바로 국민입니다. 하지만 국민은 곧 개개인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타인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나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순간 그는 집단주의의 오류로 빠져들게 됩니다.

 

너무 이기주의가 아니냐고요? 글쎄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매달 유니세프에 월급의 일정량을 기부하고 있고 여러 봉사활동도 하며 세상을 더 밝게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프로그래머지만 저의 코딩이 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해주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간 몇 백만원의 세금을 내며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키고 이 나라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즉, 저는 제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생판 남인 사람들을 돕는데 바쁜 위선적인 몇몇 골빈 대학생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댓가로 어느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 뿐이죠.

 

세상은 그렇게 점점 더 살기 좋아집니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힘입니다. 자본주의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누이 좋고 매부 좋아지며 전체적으로 서서히 좋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오늘도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습니다.

 

저는 안녕합니다. 여러분도 안녕하십시오. 쓸데없이 타인의 안녕을 비꼬는듯한 괘씸한 인삿말은 사양입니다. 이럴 때는 초등학생들의 대처법이 아주 지혜로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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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글이다. 이 정도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비판하면 좋겠다. 다만,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헨리 조지가 말했던 점은 두고두고 머리에 남는다. "위선적인 몇몇 골빈 대학생들"보다야 효율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는 있다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기에. 사실 자본주의는 그리 좋은 사상이 아니다. 아니, 자본주의의 원래 의도는 글쓴이의 생각처럼 '점점 더 살기 좋아지는 것'을 바랬는지 몰라도, 역시 글쓴이의 생각처럼 인간이 그대로 놔두지 않기 때문에 '지상천국은 없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극도록 부유한 사람들과 극도록 가난한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저항에 필요한 정신과 지성이 없고,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헨리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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