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기 이전에 아빠가 되고 싶은 나
저는 매일 점심을 병원에서 가까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그 식당은 동네에서도 제일 외진 상가에 있는데도, 매일같이 그 집으로 밥을 먹으러가는데요. 그 이유는 마치 ‘집에서 해준 밥’같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집밥’이지요. 식당이 오래되서인지 인테리어도 깔끔하지 않구요, 간판이 화려한 것도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흘깃 지나치면서, ‘여기 장사 되게 안되는 곳인가보다’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저처럼 꾸준히 오는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점심에 조금 늦게 가면 그날 준비한 밥과 반찬이 떨어져서 식사를 못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격식을 차려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세상 살 힘을 얻기도 하지요. 그래도 매일매일 먹기에는 화려하기보다는 편하고 부담없는 ‘집밥’이 최고입니다. 직접하지 않고 누군가 대신 밥을 차려준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소아과전문의의 칼럼을 쓰는 곳에 왠 ‘집밥’이야기로 시작하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로하스밀에 첫번째 칼럼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메르스’를 쓰고 나서 읽어보니- 그때야 온통 메르스로 모두가 불안해할 시기라서 전문적인 내용의 칼럼을 쓸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너무 ‘전문성’의 시대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마치 그런 조언을 받지 못하면 시대에 뒤쳐진다든가 혹은 큰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이지요. 그러다보니 아기를 키우는데에도 전문적인 지식으로’만’ 키워야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기를 키울 때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기에 저를 비롯한 여러 소아과선생님들이 육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로하스밀에서도 소아과의사의 상담게시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요.
아기를 키우다보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마치 ‘집밥’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육아법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나의 어머니가 나를 키웠던 것처럼, 내 할머니가 어머니를 키웠던 것처럼, 내 증조할머니가 할머니를 키웠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적절한 육아법이 부모가 된 지금 세대에도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바쁘고 힘든 시기에,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쉬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키우는 것까지 모두 전문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이는 부모보다는 시대를 닮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기대어, 부모로서 어느정도 실수를 하더라도, 아이들은 위해 최선을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잘 자라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무한한 책임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렇게만 살면 하루종일 긴장이 되어 쉽게 피곤해지고 지칩니다. 가끔이라도 아빠로 살아야 제가 기운을 내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어린 딸들이 한참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때이다 보니, 날씨가 좋으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모래놀이라도 마음껏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장보다는 아빠로 살 때가 더 행복한 것이지요. 저는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요, 첫째는 이제 8살이 되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는 이제 세 돌이 조금 안되었는데 우리나라 나이로는 네 살입니다. 친구중에 백일된 아기를 키우는 친구는 저보고 ‘다 키웠네, 우리 애는 언제 크냐’며 저를 부러워하기도 하구요, 자녀가 중고생인 아는 선배는 ‘아직 한참 힘들 때네. 힘을 내시게’라고 제게 위로의 말을 해주기도 합니다. 아이 키우는 것은 누가뭐래도 힘든 일 같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지요. 앞으로 로하스밀에 칼럼을 연재할텐데요, 어느때는 소소한 집밥같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딱딱한 과학에 대한 이야기도 있겠지요. 힘든 시대에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저의 부족한 경험과 지식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번째 글을 마칩니다.
사과나무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전문의 김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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