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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시기 8일전에 쓴 글....

 

아버지

작성자 김복기 작성일 2004.11.13 02:33


아버지가 많이 약해지셨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어쩌면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아직은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세상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고, 떠올리려해도 떠올려지지 않는, 그렇다고 깨끗이 잊어버리려 할 땐 잊혀지지도 않는 사건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을 무척 그리워 할 것이다. 아직은 조금 가쁘게 숨을 쉬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소리,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그리워하며 두고두고 떠올리려 노력할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또, 뼈마디만 남아 있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이지만, 손을 잡아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 우리집에는 꽤 큰 감나무가 있었다. 지금도 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으시고, 감나무의 튼튼한 가지를 붙잡고 턱걸이를 하신 적이 있다. 그 때 어린 내눈에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강해보였고,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역도선수만큼이나 굵고 든든했던 아버지의 팔은, 지금은 뼈만 남아있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많이 혼나고 때때로 맞으면서 자랐다. 다혈질이신 아버지는 가끔 불같이 화를 내실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내가 무척 갖고 싶어하던 자전거를 사주셨는데, 한달만에 잃어버렸다. 나는 말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아버지가 알게 되셨고, 잃어버렸다는 것보다도 잃어버리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신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신의 다혈질을 잘 아시는 지라, 당신의 행동에 스스로 깜짝 놀라시고 내게 미안하다고 어쩔줄 몰라하시며 위로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어렸던 나는, 아버지의 태도가 무척이나 이중적으로 보였고, 따귀를 맞은 것보다도 이중적인 태도에 더 감정이 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다면 그 때 맞은 것처럼 아버지의 손으로 맞고 싶다. 다시금 그렇게 무서웠던, 그렇나 건강하셨던 아버지로 되돌릴 수 있다면 백대, 천대라도 맞고 싶다...

중고등학생때 농구를 좋아했던 나는 툭하면 농구공을 샀다. 툭하면 농구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새 농구공을 또 사오자, 아버지는 잃어버리지 않게 할려고 초록색 락카-생생히 기억난다-로 농구공의 절반가량을 칠해버렸다. 깨끗한 새 농구공을. 난 그런 다혈질의 아버지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다혈질의 아버지가 너무너무너무 그립다. 내 소중한 물건에 무슨 색으로라도 락카를 뿌리시더라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런데 이제 볼 수가 없다.

어렸을 때 나는 혼자 운 기억이 꽤 여러번 있다. 대개 아버지 때문이었다. 자상함과는 거리가 있던, 어린 내눈엔 무서웠고 비합리적이었던 아버지에게 혼나고 나면, 무서워서 대들지도 못하고 서러워서 운적이 몇 번 있었다. 난 커가면서 후에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면 자상하고 합리적인 아버지가 되리라고 수차례 다짐을 해왔다. 절대 내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 내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 내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물음에 '아버지'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아버지를 두었길래 그런 대답이 나올까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보니,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은 정답이 하나만 있는 질문이다. 정답은 아버지다.

4남매 중에서 큰누나와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누나들과 형도 슬플 것이나, 내 마음도 누구보다 슬프다. 원래 불효자식일 수록 나중에 후회를 많이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젊으셨을 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를 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어 복음을 전하려하는데, 예전같은 믿음이 있다며, 잘 알았다며 그 얘기는 하지 말라신다. 그러시면서 이제 우리 가정을 이만큼 세워놨으니 더 이상의 여한은 없으시단다. 당신께서 집안을 바꿔놓으셨다고 말씀하실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가 태어나실 때(광복 전후세대) 우리 집안 환경이 어떠했는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힘든 환경에서 평생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아무것도 못하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겨우 조금 여유를 갖고 살만큼 되었는데, 아버지는 하늘로 가셔야 된단다...

오늘은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신 후 침대에 누우실 때 부축해드리면서 살며시 아버지를 안아보았다. 아버지의 품을 느껴보고 싶어서. 이제는 내가 품어드릴 차례가 되었는데, 변변한 효도도 못했는데, 아버지는 하늘에 가셔야 된단다.

한번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본 적이 없다. 아니, 사랑한 적이 없었나보다. 그만큼 난 아버지에게 못난 아들이었다. 아직도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또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만한 아들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다... 그 아버지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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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 나 1년차 될때까지 꼭 건강히 계시라해라..주치의의 진수를 보여드리마 (2004.11.14 20:39)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도연 : 거의 아메리칸 수준으로 봐드릴테니 꼭 그때까지.. (2004.11.14 20:40)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복기 : 고맙다. 너가 HO주치의 할때까지 살아계시는 거라면, 2년차끝날때쯤에 HO를 처음 도는게 어떠냐...? 가끔 그런 스케쥴도 있던데... (2004.11.14 22:49)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이현규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아픈 선물을 주셨구나...오늘 찾아뵈면 이전처럼 힘주어 내 손을 잡아주시겠지... (2004.11.15 01:35) 댓글버튼 삭제버튼
이현규 : 후회없이 사랑을 하고 살 수 있다면 그때쯤 우리는 예수님을 아주 많이 닮아있을 것 같구나... (2004.11.15 01:36) 댓글버튼 삭제버튼
이영수 : 어제 문득 사랑에 깊이 침잠되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죠..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도 그렇고 다른 비엠의 형제들과 자매들도 기도하고 있어요~~화이팅..주일에 맛있는것 갖고 갈게요..^^ (2004.11.17 12:42)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복기 : 이제 한달지났네... 그 그리운 날이... (2004.12.09 23:04)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이정분 : [진규아빠] 복기야 나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 (2004.12.17 09:12)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복기 : 형, 아버지가 그리운 만큼 어머니께 잘해드리자... (2004.12.18 00:26)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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