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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아버지의 나이(정호승)

아버지의 나이(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시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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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입시를 위한, 승진을 위한 도구로만 접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그렇게 가르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긴 하지만, '문학'을 포함하여 모든 예술은, 즐거움을 주는 도구여야 한다. 예술이 주는 즐거움은, 말초적 흥분을 주는 그 어느 쾌락보다고 순수하고 고상한 즐거움이다. 입시를 위해 시를 여러편 외우고 다니는 학원강사보다는, 마음으로 깊이 공감되는 시 한 편을 즐겨 노래하는 시골 할머니가 있다면, 학원 강사보다 시골 할머니가 예술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예술의 이런 특징을 꿰뚫어 보는 작가이면서,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있는 작가이다. 그가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그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여겨진다. 나는 문학, 특히 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정호승 시인의 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나 같은 문외한에게까지 시의 매력을 알려주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는 이미 최고의 시인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으로 생각해보면, 예술을 즐기려면 예술이 직업이 아닌 취미여야 유리하다. 직업이면서 즐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으로 예술을 즐길 정도면, 정말 하늘이 내려준 재능 및 성실함이 있어야 될 것이고, 그 정도 수준이 되어야 재미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벌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분야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고등학교 시절 진지한 고민끝에 실용음악을 전공하려던 꿈을 포기했다는 후배 최OO 선생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셈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음악을 음악 자체로 즐길 수 있지 아니한가. 혹시 실용음악을 전공해서 유희열, 김연우처럼 그 분야의 최고에 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음악을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확률'만 따진다면 전공하지 않은 쪽이 훨씬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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