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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바울, 그리고 백부장

  오늘 아침에 읽은 성경은 '사도행전 21장'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순교를 각오하고 로마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믿음의 단계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구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보인 사람들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A.고위 성직자(대제사장,장로)및 바리새인

 : 성직자에 고위라는 단어를 붙인 것 자체가 어패가 있지만, 예수님을 자기들의 이익 및 종교권력을 유지하는데 눈엣가시로 여겨서 여론을 선동한 사람들.

 

 B.군중

 : 군중심리에 휘말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은(혹은 못한) 사람들. 이들은 당시 성직자들에게 선동되어 예수대신 바라바를 놓아주게 하였다.

 

 C.구레네사람 시몬

 : 십자가를 끌고 가는 길에 옆에 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

 

 D.백부장, 마리아, 요셉 등

 : 일개 개인으로서 성난 군중을 설득할 방도는 없었지만, 적어도 군중심리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묵묵히 지킨 사람들. 예수님의 죽음 이전부터(부활 후에는 더욱 확실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E.바울 및 제자들

 :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치고 순교까지 한 사람들.

 

이들 중에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리새인일 것이다(교회 직분이 없으니 성직자는 아닐것이고). 그러나 혹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바뀔 여지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어서 저 중에 롤모델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D, 즉 백부장, 마리아, 요셉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잘은 모르지만) 이들은 복음을 위해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추측하건대 자기들이 발견한 진리를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았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은 매우 짧지만, 그 시간 이후 그들의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이다.

 

한 때 철없었을 때는(지금도 철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바울 같은 제자가 자연스럽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하는 제자훈련을 받으면 제자처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서른이 지나면서 보니, 그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 조금만 하면 나중에 서울대 연고대 정도는 가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인서울(in Seoul) 혹은 4년제대학만 가도 좋겠다, 혹은 2년제대학만 가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결국 자기자신의 실제 상태를 얼마만큼 정확하게 보는가의 문제이다. 지금의 내겐 백부장, 마리아, 요셉과 같이 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정도가 아니라, 정말 쉽지 않다. 쉽지 않다. 그런 고민을 깊이 담고 있는 소설이 있다. 지난 겨울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 그 책에서는 믿음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어쩔 수 없이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 깊이 공감한 기억이 난다.

 

바울이 백부장보다 훌륭한가? 내 개인적인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백부장이 바울보다 훌륭한가? 이 또한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둘 다 훌륭하다. 그러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도 백부장을 만나고,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누가복음 7)’고 하시지 않았는가. 어쩌면 우열을 가리려는 태도 자체가 건방진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바램이 하나 있다면,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바리새인과 고위 성직자처럼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조금의 사치가 주어진다면, 군중심리 및 당시 성직자들의 선동에 이끌려서 결국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군중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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