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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자녀교육에 대한 소고

1. 편작 이야기

고대 중국에 유명했던 의사 편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위나라의 임금이 편작에게 묻는다.
"그대 삼형제 가운데 누가 제일 잘 병을 치료하는가?

"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훌륭하고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저의 의술이 가장 비천합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이 대답한 내용은 이러했다.
"큰 형님은 상대방이 아픔을 느끼지 전에 얼굴빛을 보고 그에게 장차 병이 있을 것임을 알아서 그가 병이 생기기도 전에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상대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따라서 그간 자기의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큰 형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는 상대방이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그의 병을 알고 치료를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환자도 둘째형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속에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 보았습니다.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그의 맥을 짚어야 했으며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그러한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게 되었죠. 내가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2. 중요한 것은?

 

나는 '전설적인 명의'라는 이야기는 모두 '전설'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재능에 엄청난 노력이 더해져야 '명의'가 될까말까 할텐데(책 아웃라이어-일만 시간의 법칙 참조), 과거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철학은 많은 발전이 가능했지만, 자연과학, 특히 의학의 발전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중국 고대에 있었다는 편작, 화타와 같은 '전설적인 명의'가 왜 요즘처럼 정보가 많아지고 경제적 능력이 생긴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는가... 오히려 요즘 중국 의학은 '중국산'으로 치부되어 무시당하는 형국인데... 너무 주제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작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허구이든 관계없이, 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주목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말의 뜻은, '별로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화려해보이지만, 예방접종하는 것은 단순히 '주사 한대 맞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예방접종을 통해 살린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병의 고통을 모르고 지나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간혹 어설픈 지식으로 '예방접종은 필요없다'라고 외치는 해로운 사람들도 있다.

 

자녀교육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뜬금없이 '편작'이야기부터 꺼내는 이유는... 우리는 살면서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사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이다. 나부터도 주위에서 '좋은 대학가서 여유롭게 사는 것'만 보여서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가,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 같고, 공부(학습) 이전에 더 중요한 자녀교육이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주의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3. 자녀교육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입장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어느 소아과선생님의 표현을 인용해본다.

 

"자식농사의 근본은 땅의 특성을 아는것입니다.

씨앗의 품종도 중요하지만, 바람, 비, 햇빛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신을 아는것이 먼저이고, 다음이 훈육이며, 마지막이 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누구는 1,2단계가 필요없고 학습법으로 바로 들어가도 괜찮지만. 그것은 천복이지요"

 

1) 부모가 자신을 아는 것

 

부모가 자신을 아는 것이 첫번째 과정이란 말을, 곰곰히 되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말은 무시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을 모르는 부모의 말은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받았던 사랑 혹은 상처에 대해 알고,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그대로 전해주되, 받은 상처는 자녀에게 전해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서 '사랑=무조건적인 호의,친절'은 아니다. 사람이 자라기 위해서는 권위와 어려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두번째 과정, 훈육과 연결되는 주제이다.

 

2) 훈육

 

소아과전문의인 하정훈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이에게 지식 대신에, 세상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세요'

 

훈육은, 아이에게 세상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지장과 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며, 사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을 그려주는 과정이 훈육이다. 훈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원리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잔소리가 되기 쉬우며, 무엇보다 아이들은 'lovely imitator(사랑스런 따라쟁이)'이기 때문이다.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면, 아이는 잔소리의 '내용'을 배우기보다는 '잔소리하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물론, 잔소리를 적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3) 학습

 

이에 대해서는 여건이 되는 한, 부모들이 열심히 시킬 것이기 때문에 자세히 얘기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 2단계가 필요없고 학습법으로 바로 들어가도 괜찮은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복'이다. 부모가 1,2단계를 잘 만들어주어야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며, 학습의 효과도 잘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3. 간접경험과 학습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하루종일 TV나 동영상을 보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맞벌이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런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만, 간혹 우리 아이가 TV나 동영상, 특히 EBS처렴 교육적인 내용을 많이 본다면, 나중에 아이가 똑똑해지고 공부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의 두뇌는 간접적인 경험(TV 등)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발달한다. 맛있는 케익을 TV로만 본 아이랑, 직접 먹어본 아이 중에 누가 더 케익의 맛에 대해 잘 알게 될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아이의 두뇌는 만 4세까지 성인의 8-90%정도까지 발달한다. 그 시간동안 가능한한 TV같은 간접경험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아이를 안아주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 아이의 감정 뿐 아니라 두뇌까지 발달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만 4세 이후에도 두뇌는 계속 발달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 좋다.

 

아주 간혹 '안아주면 버릇나빠진다, 커서 계속 안아달라고 한다'는 어른들도 있는데...... 아이는 부모가 안아줄 때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가 발달하면서 걷고 달릴 수 있게되면, 그 다음부터는 체력적으로 부담되지 않는한, 걷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4. 책

 

처음 해보는 부모이니만큼,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 또한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런 지혜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책을 찾아본다는 것 부터 자녀양육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은,

 

- Caring for your baby and children: 미국소아과학회에서 나온 부모지침서. 영어책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영어책 읽기에 부담이 없다면 일독을 권한다.

- 좋은 아빠되기 프로젝트(김성묵)

- 아이심리백과(신의진)

- 자식의 은혜를 아는 부모(김동호)

-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김동호)

- 30년만의 휴식(이무석)

-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1(이민정)

- 자아놀이공원(이남식)

- 육아는 과학이다(마고 선더랜드)

 

곧 읽을 책

 

- 부모(스펜서 존슨)

- 엄마표 마음처방전(오은영) 

-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고재학)

- 문용린 교수의 정서지능강의

 

주위사람들로부터, '소아과의사가 되었으니 아이 아플 때 직접 치료할 수 있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물론 그런 점도 좋다. 하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을 덜 궁금해하는 정도라고 할까.. '의사는 돌볼 뿐이고, 하나님이 치유하신다(We care, but He cures)'는 말처럼! 그보다도, 내가 소아과의사가 되어서 진짜 좋은 점은, 아이의 양육과 발달에 대해 의학적인 배경지식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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