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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경제학 & 사회과학

[책] 병원이 경영을 말하다, 최명기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저자
최명기 지음
출판사
허원미디어 | 2010-05-20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척박한 의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원 경영의 모든 것!병원 ...
가격비교글쓴이 평점  


"은퇴한 프로선수들 중 오랜 시간이 지나고 노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연봉계약서를 액자에 담아놓고 그때가 좋았었지 하고 뿌듯해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연봉과는 상관없을지라도 월드컵이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는 자신의 사진을 걸어놓고 흐뭇해할 것이다. 우리 의사들도 그러한 최고의 플레이에 해당되는 것을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진료실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경기장이다. (p.50-51)"


개원을 염두에 두고 경영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읽은 책인데, 1장 '철학'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했던 전공의 3년차 때, 어느 날 밤이 생각난다.


2007년이던가.  소아과 레지던트 3년차때...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기종격Pneumomediastinum 및 심막기종 Pneumopericardium으로 기계호흡을 하면서 힘들게 버티는 신생아를 지키며 당직을 서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계호흡(FiO2 1.0)으로도 동맥혈내 산소분압(PaO2)이 유지되지 않아서 손으로 직접 앰부를 짜며 호흡을 겨우 유지시켜나갔다. 그래도 도저히 유지가 안되고, 어느 순간 동맥혈내 산소분압이 낮아지기 시작해 PaO2가 한자리수까지 떨어졌다. ABGA(동맥혈가스분석)에서 PaO2가 2.0인가 4.0인가, 그 당시 나도 처음보던 한 자리숫자였다. 그것도 FiO2 1.0에서.  "이제 더 이상 안되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심낭천자술Pericardiocentesis을 해보기로 했다.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 때 시간이 밤 11시쯤이었던가 깊은 밤이었다. 심낭천자술을 시행해서 심낭 주위에 차있는 공기를 주사기로 빼내었는데, 그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기의 동맥혈 산소분압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2일인가 후에는 기계호흡기도 떼고 자발호흡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며칠지나서 건강해져서 퇴원했다. 그당시의 극적인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 소아과의사로서 살면서 내가 했던 최고의 플레이는 2007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그 아기를 살린 일이었다. 물론 내 혼자 힘으로 그 아기를 낫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날 밤 그 아기가 있던 대학병원 내 신생아중환자실, 그 아기를 치료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마침 나였던 것 뿐이다. 그리고 그날밤 다행히 아기도 건강해졌고, 소아과의사로서의 내 인생중에 최고의 플레이가 펼쳐졌다.


지금도 외래진료를 하면서 적어도 내 마음에 드는 플레이는 가끔씩 있다. 비록 2007년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아토피피부염이 조절이 안되는 아기에게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음식을 확인하고 그 음식을 섭취하지 않도록 해서 아토피피부염이 좋아졌을 때, 세균성감염이 있어 힘들어하는 아기에게 적절한 항생제를 처방하고 2일후에 다시 온 아기가 건강해져서 방긋 웃을 때,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의 한숨이 안스러워서 대기환자가 조금 기다리더라도 육아에 지친 엄마의 하소연을 잠깐 시간을 내어 들어줄 때. 내 실력이 부족해서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명료한 설명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쭉 아기의 건강을 위해 고민하면서 진료하는 의사라는, 믿음의 눈으로 보호자가 나를 바라봐줄 때. 


그럴 때가 많지는 않지만 나는 안다. 그럴 때 느껴지는 감정들은 소아과의사로서 최고의 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런데 주위 선배 의사들을 보면 이런 플레이를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서 때로는 '소아과'간판을 내리고 일반의가 되어 의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환자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의업을 접고 다른 길을 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 나도 언제까지 소아과의사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어느정도 차서 흰머리가 많아지면, 엄마들이 할아버지선생님이라고 나에게 진료를 받기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나를 의사로서 못미더워 하는 경우가 엄청많다. 그러나 그 이유가 '나이'때문인 경우는 별로 없다). 언젠가는 나이 때문에 나를 못미더워 할 때가 올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선배의사들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그 분들 중에는 간혹 병원을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개원을 서서히 준비해서 '소아과의원'을 운영하려고 생각중인데, 미래가 다소 불안해서 걱정이 된다. 다만 아픈 아기들을 진료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더바랄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