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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경제학 & 사회과학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녹색평론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출판사
녹색평론사 | 2002-12-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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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좌뇌에 샤워를 한 느낌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은 어느 소아과선생님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한 마디로 '좌뇌에 샤워를 한 느낌'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동안 무언가 쫓기듯이 살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잠시 쉬어서 천천히 생각하게끔, 아니 그동안 너무 바쁘게 움직였던 뇌세포들을 잠시 진정시키며 생각을 멈추고 쉴 수 있게 해주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좌뇌에 샤워를 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도 같다. 저자의 어느 대담을 글로 옮겨적어 낸 책이라고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깔끔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저자의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설명을 따라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2.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20세기 중반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문부터 시작된, 개발도상국을 발전'시키겠다'는 패권국의 의지부터 설명한다. 그 이전 시대에도 나라마다 경제력 군사력이 다르긴 했지만 특정국가가 나머지국가를 발전시키겠다며 타국의 경제에 대해 간섭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는 식민지 등을 통해 '대놓고' 착취를 해왔긴 했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이후 그러한 착취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가 되자, 모양새를 조금 바꾸어 경제발전을 '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비주류의 관점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논리적으로 헛점이 많지 않아보인다.


경제성장이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정부에서 나서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말 그대로 빈곤의 형태가 '근대화'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모두가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이 때에 그런 시야에서 벗어나 경제성장 없이도, 물질적 풍요로움 없이도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으므로 잠시라도 멈추어 지금의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권하고 있다.


이를 에릭 프롬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소유가치를 지양하고 존재가치를 추구하자,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 감동이 느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존재가치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관점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한 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그것은 지금처럼 경제성장을 추구하지 않던 시대에도 사람은 풍요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 나름대로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억압과 착취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있는 욕심. 남보다 조금 더 나아야 되고 조금 더 높아야 되고 조금 더 편안해야 되고... 그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도 중요한 화두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무엇인가'도 같이 고민해야할 중요한 화두이다. 진심으로 풍요로워지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될 것이다.


3. 일본 자위대


이 책을 쓸 무렵에 일본 자위대에 군사행동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일본에서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해 저자는 군대는 폭력을 합리화하는 잘못된 제도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역사를 통해 군대를 통해 자국민이 더 많이 죽었다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반전주의자, 평화운동가인 저자를 직접 비판하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지만, 적어도 타국의 식민지로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군대를 없애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현실적이지 않다. 저자의 주장은 유토피아적이다. 전쟁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기로 하고 평화롭게 지낸다면 괜찮다. 그러나 약간의 긴장 혹은 약간의 이익만 있어도 전쟁이 일어났던게 인류의 역사 아니었던가. 약간의 긴장이나 이익만 있는 모든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에 일부 상황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 경우 국력이 약한 나라는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는가. 그것은 한국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 덕분에.


내가 저자처럼 초강대국 미국의 국민이라면, 혹은 현재도 최고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국민이라면, 나도 '군대는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36년간 식민지가 되어서 온갖 착취를 당하고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그래서 그 상처가 아직도 깊이 남아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다.


4. 영어회화의 이데올로기


책 말미에는 어학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느꼈던 생각에 대해서도 정리해주고 있다.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는 영어에 대한, 백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에 대해 지적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5. 생각을 정리하며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 그리 짧다고만 할 수도 없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책을 받았는데 오늘 낮에 예비군훈련 틈틈히 읽어서 다 읽었다. 요즘 읽는 금융위기의 역사, 착각의 경제학 같은 책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게 읽혔다. 관심있던 주제여서 그런지 소설책보다도 쉽게 읽힌 듯 하다. 


저자의 일부 관점(전쟁,민주주의)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발전과 자연에 대한 저자의 통찰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