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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경제학 & 사회과학

[책]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저자
유시민 지음
출판사
푸른나무 | 2004-01-19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밑바탕으로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바쁜 20대를 보내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의학지식 외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여러가지 책을 읽게 되었고, 이번에는 경제학 관련 서적까지 왔다. 저자는 유시민. 그의 정치적 행보와는 별개로, 경제학도로서의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치경제라는 과목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학에서도 자연과학(의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인문학 및 경제학 같은 분야에 대한 식견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의학의 여러 과목중에서도 가장 인문과학에 가까운 정신과는 내가 가장 재미없어 했던 과목이었다. 어느덧 서른이 지나고 나니 그동안 인문과학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 비로소 인문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인문과학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말장난처럼 느껴져서 아무 흥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인문과학 서적에서 인류가 살아온 이래 지속되었던, 사람들과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변화를 관찰하는 학문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돈의 흐름에 대해 사람들이 고민하고 싸워왔던 행적,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는 핵심적인 심리상태 등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고민이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지금 나이에 경제학을 처음부터 배울 에너지도, 열정도, 시간도 없기 때문에, 경제학자가 일반인을 위해 체계적으로 쉽게 정리한 책을 읽고 싶었다. 경제학자 한 명에 대해 깊이 다룬 책보다는, 역사적으로 굵은 족적을 남긴 몇몇 경제학자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룬 책을 찾고 싶었다. 경제학자 한 명을 깊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이론을 들어야 편향되지 않은 시야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를테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공부한다면 그의 이론에 매료될 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가 인지하지 못하고 실수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 중요한 점은 이미 다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 내가 찾던 그 책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아담스미스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경제학의 중요한 흐름을 11개로 나누어 설명한다. 경제학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이 예전 고등학생 때 주워들어 이름만 겨우 기억하는 '아담스미스', '맬서스', '마르크스' 같은 학자들에 대해 그의 사상과 인생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현상과 그 속에 흐르는 원리들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깔끔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렴풋이 느끼면서 정확한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는 원리가 있다면, 시대에 따른 경제학자들이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각각의 이론마다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존재했고, 이론 발표 당시에 몰랐던 장단점이 후대 경제학자에 의해 밝혀져서 칭송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족적을 남긴 학자들은,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돈의 흐름과 관련되어 사회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원리들을 누구보다 먼저 체계화 시킨 사람들이다. 이는 다른 말로,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생각은, 이전에 누군가가 깊은 고민과 연구 끝에 체계화시켰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이론이 있다면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못받거나 효용이 없는 등의 이유로 사장된 이론이거나, 아직 아무도 체계화시키지 않은 이론이거나 혹은 그 분야에 대해 이미 정립된 이론이 있으나 그에 대해 내가 무지하거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경제학의 중요한 흐름은 다음과 같다. 아담스미스의 자유방임시장에서 저절로 수요와 공급이 조절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가. 산술급수적으로 식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의 대부분(노동자)은 어쩔 수 없이 굶주림에 처하게 되거나 아니면 전쟁 같은 재해를 통해 인구조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냉혹한 천재 맬더스, 국가간 자유거래와 비교우위론을 통해 경제학에 큰 족적을 남긴 리카도,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오직 자신의 조국 독일의 번영만을 위해 수정한 리스트,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다툼이 없는 사회를 꿈꾸었으나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이었던 사람들, 그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켜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였으나 인류역사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칼 마르크스... 지금 마르크스의 사상을 접하면, 만약 내가 19세기에 노동자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었다면 그의 사상에 심취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이미 공산주의가 처절한 실패로 끝났으며 자칫하면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르크스가 본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한계는 매우 날카롭다. 비록 그가 제시한 대책이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해서인지 너무 극단적이긴 했지만.

 

여기까지 읽을 때만 해도 나에게 이 책은 단순히 경제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고센이라는 경제학자가 나오면서부터다. 그가 제시한 두 가지 이론, 즉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고센의 1법칙)과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고센의 2법칙)은 경제현상을 통해 만족을 누리려는 인간의 심리의 핵심을 꿰뚫는 법칙이다. 즉 경제학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는 법칙이다. 나 역시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때마다 어렴풋이 느끼는 원리였으나, 이미 150여년 전에 고센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이론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해한 위주로 간략히 적어봤는데, 자세히 정리할 이유도 능력도 내게는 없다. 그럼에도 간략히라도 정리한 것은 나중에 내가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람들 모두가 천재였다. 다만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부를 안겨주고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난을 안겨주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 이들 모두가 인류역사상 길이 남을 뛰어난 대학자였지만 그들의 이론중에 단점이 없는 이론은 없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나오게 될 경제학이론 또한 어느 정도의 단점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경제학이론의 한계라기보다는 사람에게 욕심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다양한 이론을 제시한 경제학자들 중에는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사회현상을 관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 중에는 자신의 이론을 가지고 특정 계층 혹은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 옳지 않은 정책을 합리화시켰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 역시 욕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긴 하겠지만. 이는 내가 뒤늦게 인문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학 서적을 보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특정인 혹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논리에 희생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 경제학이론을 가지고 논리를 펼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만...

 

최근의 자연과학(어쩌면 일부 인문과학까지도)에서 연구라고 하면, 정해진 실험실에서 최첨단 장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실험을 해서 미시적 세계를 관찰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말 멋있는 연구는 이 책에서 소개된 경제학과 같이 사람의 본성 그리고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감추어진 원리를 찾아내고, 나아가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비관적인 결말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제학이 도덕철학에서 한 분파로 독립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순히 돈의 흐름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