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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교육 & 육아

[책]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요아힘 바우어, 에코리브로

'몸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요아힘 바우어의 다른 책,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을 읽었다. "경쟁과 도태를 기본으로 하는 다윈주의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반박한다"는 제목 아래, 최근에 출판된 과학적 논문들을 근거로 논리를 펴 나가는 책이다. 전반부에서는 사람의 동기부여체계는 '타인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관심,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에 대해 기술하며, 후반부에는 이를 바탕으로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섣부른 기대인지는 모르지만, 19,20세기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암울하게 바꾸어 놓은 시대적 사상의 흐름을, 21세기에 출판된 요아힘 바우어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이 회복시키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미래는 더 암울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실험이 인류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것처럼, 혹은 다윈과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경쟁과 도태가 지금의 인류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처럼.

 

1. 동기부여체계

 

사람의 동기부여체계, 즉 같은 일을 해도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기쁘게 하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마지못해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것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전반부는 사람의 '동기부여체계'에 대해 알려진 생물학적인 결과들을, 과학적 논문들을 근거로 기술한다. 도파민, 옥시토신, 오피오이드 같은 물질들이 사람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물질들이 타인의 사랑, 관심,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분비된다는 사실에 대해 근거가 되는 여러 논문들을 인용하면서 기술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타인의 사랑, 관심,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이다.

 

내게 충격을 안겨준 것이 이 부분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특히 경쟁이 극도로 심한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산이 있어야 된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그럴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러한 직관이 과학적 근거(실험결과)를 가진다는 것이 참 놀랍다. 더군다나 그러한 근거들이 실린 잡지가 Science, Nature, Nature Neuroscience, Journal of Neurophysiology 등과 같은 세계적인 학술지라는 것에 신뢰가 간다(의학계에서 이런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다는 것은, 마치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세계적인 클럽에서 뛰는 것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부가적으로 동기부여체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몇 개 더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함께 나누는 웃음(유머), 음악 같은 것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클래식을 찾아서 듣고 있는 내 모습을 설명해주는 사실인 듯 하다.

 

2. 스트레스 그리고 후성학(epigenetics)

 

책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두 가지만 더 꼽아보면 이렇다.

 

스트레스호르몬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어느정도 알고 있다. 스테로이드(glucocorticoid)로 대변되는 스트레스호르몬은 인체의 여러가지 질환(알레르기, 류마티스질환 등등)에 치료제로 사용되며 부작용도 많기 때문에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은 약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호르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사람에게 항(anti)스트레스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뇌에서 해마(hippocampus, 기억과 공간인식을 담당하는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수용체(glucocorticoid receptor gene)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누군가로부터 안정적인 사랑을 받은 경우에 생화학적인 변화(de-methylation)가 생겨서 스트레스반응을 잘 견디게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같은 스트레스를 겪더라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격렬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어떤 사람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차이를 설명해주는 과학적 발견이다.

 

학창 시절에 동기 여학생중에 굉장히 안정적인 정서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주위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매우 기분을 상해하거나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평상시에도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를 갖고 있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 그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그 때 '아빠와 딸의 사이가 좋으면 저 친구처럼 안정적인 정서를 가진 딸이 되나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도 언젠가 아빠가 되면, 그리고 딸이 태어난다면 저 친구의 아버님처럼 딸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주어서 딸이 안정적인 정서를 갖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사랑스러운 딸이 하나 있다. 이러한 내 행동과 사고의 근거가 되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한 셈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아빠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인생에는 워낙 많은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누군가로부터 안정적인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받은 그 사람은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된다. 여기서 사랑을 주는 이는 많은 경우 부모이겠지만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그렇지 못할 경우, 조부모일 수도, 이웃일 수도, 선생님일 수도 혹은 하나님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인상적인 내용은 후성학(epigenetics)에 대한 내용이다. 유전학을 공부하다보면 마치 유전자가 인생을 결정하는 듯이 오해하기가 쉽다. 그런데 유전자만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가 조절된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제시한 비유가 인상적이다.

 

"유전자란 음악회용 그랜드 피아노와 비슷하다. 피아노 연주회를 열려면 그랜드 피아노가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악기 제조자가 만든 피아노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피아노를 연주할 사람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도 필요하다. 유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생체 분자들은 유전자가 생물학적인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다. 여기에서 지휘자의 역할을 맡는 전체 조직체는-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량의 신호물질들을 생산한다.....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즉 유전자만이 조직체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거나 명령을 내릴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은, 피아노 연주회는 슈타인웨이 피아노의 지휘를  받아야만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되었다. 연주회가 끝난 뒤 참석한 청중들 가운데 피아노에게 찬사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p.112)"

 

3. 육아

 

사실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딸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나는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학창시절에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것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부모가 된 지금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공부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도 100%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그 딜레마를 풀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현재로서 그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은 아직 모르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중요한 원칙은 조금 알 듯하다.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같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서로의 필요를 인식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 적절한 그리고 올바른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가능하다면 적당히(이 말이 참 어렵다...) 긴장할 정도의 자극(스트레스)를 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가 스스로 제시한 삶의 목표를 향해 닮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법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요즘은 '자기주도학습'이라는 것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게끔 하는 것이 큰 인기를 끈다고 한다. 나도 조만간 알아볼 예정이다. 동기부여를 스스로 시킨다는 점에서 참 놀라운 접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다만 '자기주도학습'의 기본적인 바탕이자 목표가 '좋은 성적'인지, 혹은 '사람 고유의 특성을 존중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인지는 구분하면서, 즉 아이를 하나의 돈벌이로 생각해 성적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부모들을 현혹시키는 것인지, 혹은 아이를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 대하며 애정을 보여주는 것인지 구분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

 

4. 창조 그리고 종교

 

결국 이 책의 결론은(그리고 어쩌면 인생의 결론도) 사람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창조이든 진화이든지 혹은 그 무엇이든지 간에 관계없이-나는 창조라고 믿는다- 사람은 가장 행복하려면 타인을 서로 돕고 신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유류와 영장류,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정 종교에 대해 옹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는 관점에서 책을 써 내려갔으며, 근거로 제시하는 것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의사들이 읽는 학술지이다. 그런데 그 결과-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라-만 놓고 보면 매우 종교적이다. 그 말인 즉,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이 종교와 과학의 교차점에 위치한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과학자(의사)의 시야로 해석한 것이 이 책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일 것이다. 다만 다른 또 하나의 큰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과학자의 눈으로 해석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또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조지프 르두같이 편도체를 통해 인간의 감정에 대해 깊이 연구한 과학자도 종교에 대한 과학적 '검증' 필요성에 의문을 제시했다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 그 분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