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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교육 & 육아

[책] 전성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

기존의 학교와 다른 학교를 제시하며 유명해진 거창고등학교. 거창고의 교장을 역임한 전성은 선생님이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진단하고 처방한 책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진단은 비교적 정확해보이나, 처방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책의 초반부는 큰 기대를 하게 하였으나, 후반부에서는 실망을 하였다. 그런 면에서 마치 '인구론'을 쓴 맬서스 같다고나 할까...

 

교육문제에 대한 책임이 학교에만 있지 않고, 모든 사회에 있다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제국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현재의 교육이 -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 왜곡되어 있다는 지적에도 깊이 공감한다. 내 생각으로는, 진단은 정확해보인다. 그러나 처방에 대해서는 일면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전성은 선생님을 비롯한 거창고등학교 설립자 및 교사들이 기독교신앙에 입각하여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높이 평가한다. 현재의 교육 문제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이 책에서 말하는 대안의 상당부분은 놀라운 것이지만 어떤 주장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비판적으로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곳곳에 자기 논리에 스스로 빠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자유의 탈을 쓴 경쟁에 대한 상처가 너무 많아서일까. 저자는 책에서 강조하는 주요 교육이념으로 '평등'을 꼽는다. 경쟁이 아닌 시합을 하여야 하며 낙오자와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서로의 다름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며 평등한 사회. 말은 좋지만 실현가능한 지가 궁금하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경제학자가 평등을 위해 고민을 하고 실험을 했다. 그것이 부드러운 정책이었던 경우 한 지역에서만 성공을 했고 그나마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것이 급진적이었던 경우 러시아를 비롯한 넓은 지역에서 비교적 오랜기간 지속되어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처참히 실패하였고 인류역사에 지우지 못할 아픔을 남겼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당연한 말이지만 둘 다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그 중간에 어딘가에 이상에 가장 가까운 제도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자본주의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반대편 극단인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였으나, 그 또한 극단적인 자본주의에 비해 적지 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그 상처라는 것은, 인간이 모두 평등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역시 그 속에서도 힘있는 특정 계급이 생겨서 나머지 계급을 착취하게 된 것이다. 매우 저조한 생산성은 덤이었고.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도입했던 개인농장이 전체 농장의 3%에 불과했으나, 그 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은 전체의 60-70%에 달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검은 것은 검다 하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하는 게 교육이다(p.172)"

 

저자의 말이다. 매우 훌륭한 관점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검고 흰 것으로 양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생각에는, 저자의 교육에 대한 관점을 좀 더 완전하게 하려면 '검은 것은 검다 하고 흰 것은 희다 하며, 중간색은 중간색이라고 말하는 게 교육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혹시 말꼬리잡기라고 느껴지는지? 저자의 다른 표현을 인용해본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허위 선전이다. 우리의 재벌들을 보라. 10만 명이 한 명을 살찌우기 위해 일한다(p.146)"

 

이 말은 얼마만큼 허위 선전일까?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로 기억하는 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허위이다. 재벌이 살찐 것은 맞다. 그러나 삼성덕분에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높아진 것도 모조리 부인할 수 있는가?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만큼 삼성이라는 기업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업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부정할 수 있는가?

 

다른 예를 들어본다. 전세계가 아이폰, 아이패드 때문에 난리다. 애플이라는 회사를 이끄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애플을 만든 것은, 과장하면 '스티브 잡스'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건강이상설이 나올 때 마다 애플 주가가 요동친 것을 보라.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이야기 해도 허위 선전인가? 내가 보기에 저자의 관점은 '흰 것은 희다고 말하지만, 검은 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색(회색)은 검은 색이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재벌이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댓가로 재벌이 되었고, 사회에 대한 환원을 게을리 했다는 것은 분명 비판 받을 일이며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허위 선전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그런 천재가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자기비하로 밖에 여겨지지 않으며, 양비론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도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천재가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정말 실력이 있다면 10만명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행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천재가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서양문화에 밀려 전통문화가 쇠퇴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는 저자는, 왜 우리나라에서는 뛰어난 천재가 나오지 못한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모든 현상을 중용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신의 주관이 없으면 세파에 휩쓸리기만 하기에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내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매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어느 사상에 가까운 쪽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상을 인정하고 균형잡힌 시야로 본다는 뜻은 결국, 아무 사상도 믿지 못한다는 말과 똑같다.

 

스스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고 책 서문에 적었기에 나름 기대를 하였고, 진단에 대해서는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으나 그의 처방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거창고등학교는 분명 훌륭한 하나의 학교이지만, 거기까지다. 거창고 같은 학교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모든 학교가 거창고 같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자유와 평등 모두 중요하고 포기할 수 없는 관념이지만, 자유하기만 하거나 평등하기만 한 것은 매우 위험하다. 책 뒷면에 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부장관 못 시켜 드린 것도 죄송합니다'라고 하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자는 교육부 산하에서 정책을 제시하는 위원으로는 반드시 있을만한 분이기는 하지만, 한 나라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교육부장관이 되지 못한 것이 어떤 면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