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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책]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저자
우종학 지음
출판사
IVP | 2009-04-07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신앙-과학’에 얽힌 해묵은 편견을 벗겨 내는, 흥미 넘치고 신...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내가 배워온 창조론과 진화론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의 기억이다. 교회에서는 7일간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배웠는데, 중학교에서는 다윈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을 배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교인 만큼 아무래도 깊이있게 다루기보다는, 연대별로 발견된 화석을 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으니 진화를 통해 사람에 이르렀다는 정도로 배운 것 같다. 이러한 교육에 대해 교회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진화론을 믿더라도 꿋꿋이 창조론을 믿어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러번 들었던 기억도 난다. 교회에서는 창조라고 하고 학교에서는 진화라고 하는 통에 내 마음에서도 다소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 교회다니면 창조론을 믿어야지. 진화론이 틀렸을 거야'하고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생각이 약간 변했다. 생물학부터 시작해서 생화학, 생리학 및 임상의학으로 이어지는 교과과정을 배우면서, 나는 과학을 통해 창조를 증명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시계를 인간이 만들었다는 점을 비추어, 복잡하게 만들어진 인체조직을 보면서 창조주가 설계 및 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큰 무리가 아니라고 느껴진 것이다.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누군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당시 기독교인들 사이에 창조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를 찾아 과학으로 창조를 증명하려는, 이른바 창조과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나도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지나쳐버렸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의학에서 배운 사실, 이를테면 사람의 DNA와 원숭이의 DNA가 98%정도에서 일치하며 나머지 1-2%의 차이만 난다는 것과 같은, 진화를 뒷받침하는 사실을 배우면서 잠재적으로 진화의 가능성도 어느정도는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 년이 지났고 그동안 미국 정신과의사 스캇 펙 박사(이분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다)가 쓴 유명한 책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진화라는 현상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므로 외부의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진화가 오히려 창조의 증거일 수 있다고 언급한 문장을 읽으면서 내 생각에도 큰 전환이 일어났다.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창조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관점은 나를 놀랍게 했고, 나는 즉시 그러한 가능성을 수용했다. 이후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서 이러한 생각(진화가 맞을 수도 있다. 창조의 과정일 수도 있다)을 잠시 내비쳤다가 내 의도와 달리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꼭 그 문제 때문만은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 때 일부 사람들은 나를 '사탄의 종'인 듯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불쌍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동안 창조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내가 가졌던 의문과 갈등에 대해 속시원한 대답이 들어있었다. 창조와 과학의 갈등이로 포장된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에 대해 갈릴레이가 받은 종교재판 이야기로 시작한다. 현대의 사람들은 갈릴레이 시대에 지구중심설=성경=진리이며 태양중심설=과학=성경에 대한 도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나도 마찬가지로 과학을 무시한 종교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는 여태껏 (이 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한 적이 없었다.


2.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무신론자였을까?


갈릴레이의 재판이야기에는 교회가 과학의 발견을 무시한 것처렴 이야기하면서, 당연히 갈릴레이는 무신론자였던 것처럼 가정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는 말 그대로 순수한 과학자였다. 그가 당시 태양중심설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으나, 태양중심설이 탄탄한 증거를 갖추게 된 것은 케플러 등을 비롯한 후대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재판 당시 태양중심설은 객관적인 과학으로 인정받기에는 증거가 부족했고, 갈릴레이 역시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이쯤되면 뭔가 이상해진다. 


재판을 통해 교회가 과학을 무시했다는 것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이었던 셈이다. 자신이 가진 과학이라는 힘을 통해 교회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교회도 할 말은 없다. 교회 역시 과학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고(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고), 과학뿐만 아니라 칼과 창과 무기로 이교도를 제압해온 역사 또한 수없이 많지 않은가. 


3. 창조론와 진화론


창조와 진화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라면, 우선 몇가지 개념을 정확히 잡고 시작해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 유신론과 무신론이 그것이다. 진화론을 무신론의 근거로 생각하는 것은 진화주의라고 한다. 


진화론은 순수한 과학이다. 누구나 관찰 가능한 사실이라는 의미이다. 다만 이것을 무신론의 근거로 '해석'하면 '진화주의'가 된다.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오히려 진화는 창조의 근거'라고 '해석'한다. 객관적인 사실(진화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과학은 진화의 증거를 가지고는 있으나, 무신론의 근거는 없다. 해석을 무신론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반대로 과학이 창조의 증거가 되는 것도 어렵다. 해석을 유신론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니. 결국 불필요한 싸움을 가지고, 지금까지 열심히 싸워와서 힘만 낭비하고 상해를 준 셈이다. 내가 접하는 갈등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 이 책의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