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종교 & 철학

그림자, 이부영



그림자

저자
이부영 지음
출판사
한길사 | 1999-10-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칼 융 전공의 원로 정신분석학자가 내놓은 3부작 가운데 첫째권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스스로 완벽한 척 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들은 마치 자기의 의견이 절대적인 진리인 듯이 다른 의견이 파고 들 여지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어떤 이들은 자신의 관점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언제라도 더 좋을 수 있다는 듯이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겸허히 반영하며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를 보면서 '저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자기 자신만 모르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고, 후자의 경우를 보면서는 '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겸손함이 자기자신을 훌륭하게 만드는 구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이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다보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품이 바로 겸손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 중에 내가 해준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는데 유독 싫은 이들도 간혹 있다. 이를 테면 나같은 경우, 누군가 자신만의 생각이 완벽하다는 듯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들 때, 그의 의견이 독단적일 수록 그에게 싫은 감정이 느껴진다. 이야기를 하다가 내 생각에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 그 점을 지적하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 면도 있네'라고 인정하기보다는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말하는 게 다 맞는 말이야. 너가 뭘 안다고 그래'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해보면, 내가 그렇게 독단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단적인 모습'이 실상은 내게 있는 것인데, 타인에게 그런 모습을 느끼고 내가 분노를 느낀다. 이것을 분석심리학의 용어로 표현하면, 내 안에 있는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로 '투사'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내 모습이다. 다만 내가 평소 의식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기에 내 자신이 아니라고 느낄 뿐이다. 용어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이부영선생님의 책에서 두 용어의 정의를 옮겨본다.


-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그림자는 자와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림자, p.41).

-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식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성격,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바로 그 성격이다.(그림자, p.89).

- 투사란 영사기를 통해서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 영상이 스크린에 있다고 믿는 심리적 현상이다. 스크린에 비춰진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가 영사기 속에 있듯 나쁜 것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밖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분석심리학이야기, p.28)


분석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그림자, 즉 열등한 인격을 짐작할 수 있는 팁을 하나 알려주는데, "당신의 친구중 한 사람이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 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때"에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 내가 가장 앞장서 비난해왔던 모습이 사실은 내 속에 감춰져있어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한 때 세속화된 기성교회에 신랄한 비판을 해서 청년 기독교인들에게 큰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성추문 등의 물의를 일으키고 큰 실망을 안겨준 어느 목사의 이야기나,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고 어느덧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보수'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어렸을 때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나는 이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하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어느덧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그 모습 비슷하게 살고 있는 어른의 이야기...같은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에 두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먼저는 탐욕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에는 부자들이 싫었다. 특히 돈많다고 자랑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엄청 싫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중에 어떤 이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 부자가 된 이들도 있을 텐데, 마치 모든 부자들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싫어했다. 특히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를 보이는 사람들은 더 싫었다. 그리고 대학생이던 20대때에 돈과 권력, 성으로 오염된 성직자와 교인들을 무척 싫어했다. 아마도 내게 돈이 많아진다면, 내가 가장 싫어하던 '돈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습 혹은 돈에 오염된 교인의 모습이 내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내 주위 사람들은 이미 그런 모습을 내게서 보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 그림자였음을 깨달은 또 하나의 예는 교회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형 기독교문화에서 자랐는데, 내가 10대를 보냈던 교회나 20대를 보냈던 네비게이토 선교회 둘다 매우 보수적이고 엄격한 문화였다. 그리고 30대가 되면서 기존에 다니던 교회와 갈등이 생겨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그 때 교회를 옮기게까지 한, 기존교회와의 주된 갈등은 성도 개인의 자유에 대한 것이었다. 기존교회에서는 그 교회에서 세워놓은 여러가지 규율과 훈련을 따르기를 요구했는데, 그 교회의 규율과 훈련을 따르는 교인은 '잘 성장한(훌륭한)' 교인이라고 여겨졌으며, 잘 따르지 않는 교인은 미성숙한 교인으로 여겨졌다. 그 곳에서 (보수적인 기독교세계관이 아닌)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나서 얼마후에, 주위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릴 여지가 있고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이므로 앞으로 주의하라는 언질을 듣기도 했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이 개인의견을 완전히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같은 의견을 말해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들이느냐, 반대로 '위험한 생각이니 네 생각을 고쳐라'라고 받아들이냐는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 보수적인 교회의 그림자는 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도 갈등의 골이 깊었으며, 대화로 풀려고는 했으나 대화할수록 생각의 차이가 극명해질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그림자는 그 보수적인 교회였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그 교회에서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분노라 할 정도로 화가 많이 났었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데에도 수 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아마도 그 교회도 나에게 받은 비판 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아직은 융학파 분석가에게 분석을 받을 여건은 안되고, 책을 한 번 읽고 언뜻 떠오른 것은 이 정도이다. 사실 쉽게 생각난다는 것은 무의식이 아닌 의식에 속한다는 것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무의식에 감춰진 내 그림자는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내 무의식 속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에 나는 그때마다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