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사/내 생각

가야할 때...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시인은 말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아름답다'정도의, 낭만적인 표현으로만 생각했던 이 시 속에는, 내가 '떠나는' 경험을 해보니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중 가장 괴로운 경우는, 나는 더 있고 싶은데, 나를 제외한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이다. 그 곳이 이익단체나 회사조직이라면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종교 공동체라면 '이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떠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하다. 나라는 존재의 밑바닥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존재의 밑바닥을 경험하기에 쓰디쓴 경험이 되고 비참해진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 속에서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쩌면 인간이 경험하는 것중에, 슬픔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역설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가장 큰 슬픔은 가장 큰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까이 지내는 한 가정이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미 십수년을 같은 교회에서 지낸 가정이고, 앞으로도 평생 같은 교회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가정인데 -본인이나 타인이나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며 어쩔 수 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 집이 떠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리고 떠난 후 적어도 수년간 겪을 슬픔과 소외감, 인생에 대한 무상이 나에게도 전해져와 마음이 씁쓸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맞는 친구 혹은 가정과 가까이 살며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를 꿈꾼다.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마음을 열고 지낸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그런데 삶은, 마음을 터놓고 한마음이 되어 살 수 있는 인생을 극소수에게만 허락했다. 그러한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냐, 세계관(가치관)의 문제이냐, 신앙의 문제이냐, 자녀의 문제이냐, 건강의 문제이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거의 모든 인생은 그런 연합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 설령 그런 연합을 누리더라도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되거나 아니면 단기간동안 제한적으로만 허락될 뿐이다.

그러한 연합을 경험하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내가 양보하고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열고 믿으며 살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그들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었는데 연합할 기회와 능력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내가 그만큼 스스로를 낮추었기 때문이야'라고 스스로를 높이며 말한다.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을. 마치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치고 가뭄이 와도 그것이 자연인 것처럼... 그리고 자연은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2012년 8월 9일. 내가 지난 교회를 떠나온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내가 참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정이 지금의 교회를 떠나기로 오늘 결정했다. 마음이 씁쓸하다. 

'관심사 >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인이야기 6권을 읽다가  (0) 2013.02.18
대선투표 후기  (0) 2013.02.13
인생 2악장 - 20대를 떠나보내며  (0) 2013.02.13
세례식의 감동  (0) 2013.02.13
반지 이야기  (0) 201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