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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프롤로그(초고)

프롤로그- '멋진 신세계'를 찾아 출발한 여행

저는 지금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탄 기차는 ‘인생호’라는 기차인데,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객실 안이라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대신에 기차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가서도 안되구요. 가끔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보면, 나도 저 새처럼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 기차가 출발한 지는 이제 36년이 조금 더 지났습니다. 처음엔 천천히 달린다고 생각했던 기차는 언젠가부터 속력을 서서히 높이는가 싶더니, 지금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사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더 빨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시간이 갈수록 기차의 속력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풍경이 휙휙 지나갑니다. 출발한지 20년차정도까지는 비교적 풍경을 감상하면서 기차여행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부터는 기차의 목적은 풍경이 아니라 속력이라도 되는 양 앞으로 달리려고만 했습니다.
 
속력때문인지 시간때문인지 기차가 서서히 낡기 시작했습니다. 30년차쯤엔 이대로 쌩쌩 달려도 끄떡없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그렇게 느끼기 시작한 바로 그즈음부터는 기차 구석구석에 묻은 페인트가 조금씩 갈라지는가 싶더니, 얼마전에는 기차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부품이 갑자기 탈구될 뻔해서 깜짝 놀란, 아니 위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햇빛과 바람, 비와 눈을 겪어와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요.  여기저기 낡은 흔적이 한 두군데 생겨날 때는 참 속상했는데, 지금은 큰 사고없이 무사히 굴러만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기차가 낡아가는 것에 대한 속상함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기차의 제일 앞칸에 있는 기관사실에는 제 이름 석자가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한동안 제가 이 기차를 앞으로 가게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언젠가부터는 내가 하는 건 겨우 몇가지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권한, 이를테면 속력을 조금 높인다든가 줄이는 것 및 객실안에 조명을 키고 끄는 것 정도와, 기차의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판을 볼수 있는 권한 정도라는 것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속도를 내고 싶더라도 가파른 언덕을 만난다면 내 뜻과 관계없이 기차는 천천히 간다는 것(그 순간 나는 점점 힘겨워한다는 것)과, 내가 천천히 가고 싶더라도 내리막길을 만나면 역시 내 뜻과 관계없이 기차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게 된다는 것(그 순간 나 역시 무서움에 짓눌리게 된다는 것)을 몇 번 경험하게 되니, 이제는 내가 기차의 속도를 조절한다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선로가 평탄한 곳에 있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직진만 하는 줄 알고 있던 기차가 곡선주로를 달리고 있다고 느낀 건 몇 해 전입니다. 한 번은 기차가 급회전을 하는지 몸이 이리저리 몇 번 흔들렸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서서히 기차가 회전한다고 느낀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때처럼 흔들렸던 것은 처음이었지요. 몸이 날아가 객실 벽에 부딪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러다 탈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 때 알았습니다. 기차가 탈선하지 않는 것은 레일이 기차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기차의 목적지는 ‘멋진 신세계’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충격이 있기 전까지는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열차를 타고 앞으로만 달려왔던 것이지요. 이제는 선로가 방향을 바꾼 덕분에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닿을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멋진 신세계에 당도할 것이라고 잠시 느껴졌지만 , 결국 멋진 신세계로 가는 선로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괴로웠습니다.

제가 지나왔던 선로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때쯤이었습니다.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이반이, 소설 속에서 원하는 만큼 땅을 얻기위해 처음에 한쪽으로 직진만 했던 것처럼 직진만 해온 제 기차는, 커다란 곡선선로를 따라 회전하는 순간부터 옆 창문을 통해 제가 지나왔던 선로의 일부가 저멀리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눈에 익은 자연풍경과 인간이 세운 여러 구조물의 뒷모습도 다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차의 방향도 충격이 있기 전과는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충격이 있기 전에 태양은 분명 내 왼편에 있었는데(저는 서쪽으로 가고 있던 것이었지요), 지금은 내 오른편에 있습니다. 아직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리로 가면 내가 출발한 그 곳으로 가겠구나 하는 느낌은 듭니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멋진 신세계’가 사실은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멋진 신세계’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고통도 없고 편리하기만 한 신세계를 그리고나서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은 멋지기는 커녕 메마르고 의미없는 괴로운 신세계라는 점을 헉슬리의 소설에서 그리고 있듯이, 내가 가고 싶어했던 곳도 사실은 겉보기에만 잠시 멋지게 “보였던” 신세계였습니다. 그곳에 가보지 않아서 알수 없지만, 기대했던 만큼 멋진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요. 내가 기대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멋진 곳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진짜 멋진 신세계는 선로를 따라가는 기차여행 그 자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화려한 대신 메마른 삶보다는 그때그때 마주치는 풍경을 진실되게 감상하면서 여행하는 것이 더 멋지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된 것이지요.


방향을 틀은 기차를 타고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처음 가보는 길인 동시에 처음 가보는 길이 아닙니다. 처음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은, 가면서 보이는 풍경이 이전에 지나쳐왔던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이전에 간단히 보고 지나쳤던 풍경의 이면을 새로이 볼 수 있는 여행입니다. 밝은 줄만 알았던 건물의 뒤편에 어두움이 있었고, 민둥산인줄 알았던 산의 이면에는 수많은 생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방향을 틀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제가 보고 지나쳐왔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다 지나가버릴 것들이라고 애써 의미를 없앨 수도 있겠지만, 지금 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서라도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은 것이지요.  


이 기차여행을 가능한 오래, 그리고 허락된다면 평탄한 길로 가고 싶습니다. 가족과 친구 때문입니다. 혼자라면 기차여행의 의미가 별로 없겠지요. 지금은 저를 사랑해주고 제가 사랑하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기에,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싶습니다.


제가 겪고 느꼈던 것들이 당연히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보는 것이 다른 것처럼, 제가 보는 관점으로는 지구상 수많은 풍경중에 극히 일부만을 볼 뿐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본 것에 대해서는 진실되게 나누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진실’로 글을 써보고 싶을 뿐입니다. 바란대로 쓰게 될지에 대해서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어왔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 스스로 진실되다고 믿었던 바로 그때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때였음을 몇 번 경험해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진실보다는 ‘충분하지 않은 진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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