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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무제

융연구원 입문에 관한 생각

최근들어 융연구원 과정에 입문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2년 융을 처음 접한 이후, 융학파분석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어왔지만, 내 자신이 정신적인 괴로움을 겪어오면서 그 동경은 대부분 매우 약해졌다.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듯이 화려하지도 않을 뿐더러 환자의 오래되고 깊은 고통을 같이 짊어져야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같이 짊어진다는 것이지, 내가 괴롭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환자의 영향을 받아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내야 된다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가까운 사람의 정신적인 괴로움(그리고 대부분 그런 경우 동반된 외부의 어려운 현실)도 같이 겪어나가는게 참 어려운 일인데, 낯선 사람의 괴로움을 어떻게 짊어지겠는가.

그러던 중 최근 한두달전 아내가 먼저 융연구원 과정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도 그동안 멀리 했던 융연구원 과정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기 시작했다. 마침 꿈에서도 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꿈은 중립적으로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나와 분석가선생님은 긍정적인 면을 크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내가 부정적인, 우울한 감정(아니마)에 휩싸이며 시간을 보내고(허비하고) 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도 싶은(벗어날만큼 재미있는,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성취만을 위해 보내왔던 지난 20여년의 삶-그 삶은 의미와 감정이 별로 없는 무채색에 가깝다-에 새로운 즐거움과 흥미로 채색을 하고 싶기도 하다.

학생때 정문현선생님에게 투사되었던 내 속의 지성은, 그 역할을 20년동안 잘 해 왔다. 그 덕분에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20여년간 사고형으로 살면서, 책과 논리의 세계에서만 살아온 나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마치 한쪽 폐로만 살아온 것처럼 숨이 차고 답답해지는 상황에 당면하게 되었다. 하나의 폐로는 충분하지 않아, 좀 더 넓은 공기를 마시며, 넓은 세계를 보며, 넓은 의식을 가져야 되는 필요성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 역시 내 꿈에서 몇 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아무튼, 내 우상과도 같았던 정문현선생님같은 삶을 추구해오기를 20여년, 어느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온 지금에서는, 그 전에 보이지 않던 삶의 어두운 면들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논리적인 지적인 삶의 태도는 몇년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래의(내면의) 불안을 다스리기위해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지식을 더 습득하였으나, 신경증은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분석을 1년여간 받아오면서 이제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은, 논리와 지성보다는 감정과 감성, 치밀한 계획보다는 무계획에 삶을 맡겨보는 경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인데, 그러던중 융연구원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일련의 꿈이 나타났다.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외부의 조직인 융연구원에 투사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이가 곧 40이다. 그동안은 당연시하였던 건강도, 젊음도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과거 한국 기독교에서 주장한 것처럼, 가치를 외부에 투사해서 특정 목표나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쓰는 것-타인을 바꿔야 된다고 외치며 땅끝까지 선교하려는 것-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회적으로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는 삶이 필요한 것 같다. 융심리학에서 개성화과정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살아봐야만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살아온 삶(성격과 페르조나)을 근거로, 그리고 분석되어 알려진 내 무의식을 근거로, 어떤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잡아나갈지에 대해 약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내가 원한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며, 내가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 내 바램을 외부에 투사했던 것이기에- 거의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몇가지 힌트란,
대학생때 감염내과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희열을 융심리학을 접할때에도 느껴진다는 것-이것이 미래의 나를 괴롭게 할지도 모르겠으나-과, 20여년동안 충분히 발달시킨 사고형의 두뇌, 그리고 최근에 꾸었던 융심리학-더 정확히 하면 무의식에 대한 탐구-에 대한 긍정적인 꿈 정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