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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헤아려 본 슬픔, C.S Lewis, 홍성사

헤아려 본 슬픔, C.S Lewis, 홍성사

헤아려 본 슬픔 (A Grief obseved)

부영이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처음엔 무슨 뜻으로 이 책을 선물했는지 의아했다. 내가 슬픔에 빠져있기 때문에 책을 읽고 위로를 얻으라는 의미로 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슬퍼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표시'로 준 것인지. 그만큼 나는 슬픔을 회피하고 싶었다. 아들로서, 의사로서 내가 취할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은 '회피'였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 가족과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할 그 시간을, 가능하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있든지.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에 다가올 슬픔에 대해 더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들은, 내 슬픔에 대해 언급하며 위로를 해주려고 하지만(그 마음은 정말 고맙다), 솔직한 내 심정은 그 주제는 가능한한 잊혀지도록 더 유쾌하고 더 의미있는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회피하려던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슬픔에 대해 observe하게 된 것이다. C.S. Lewis가 그의 아내 H와 사별한 후 쓴 글인데, 슬픔에 대해 객관적인 기술이나 해법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듯한.

C.S. Lewis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변증가이다. 그가 뛰어난 작가임을 알아볼 수 있는 표현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책 1,2장에서는 불안정한 내면을 아무런 여과없이 솔직하게 표현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는걸까'라고 조금 두려워질 정도로. 그러나 3,4장으로 가면서(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이성을 되찾는다. 눈물로 눈이 흐려져 있을 때는 어느것도 똑똑히 보지 못하다가 눈물을 닦고 나면 한결 나아지는 것처럼.

영화 Patchadams를 보면, 주인공이 의과대학생인 시절 말기 췌장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병실에 들어가서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돕는 장면이 나온다. 속담, 영화 대사, 소설속 표현 등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표현을 사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며 편안히 임종하도록 하는 장면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슬픔에 대해 (뛰어난 작가의) 표현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어느덧 내게 있는 슬픔이 (여전히 그대로 있겠지만) 한결 받아들이기 수월해지는.

혹 가까운 이가 나와 비슷한 슬픔을 만나게 된다면(가능하면 그런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이 책을 선물하게 될 것 같다. 그가 하나님을 믿거나, 혹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