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김진, 뜨인돌
단숨에 읽었다.
책 제목에서 '중생'이란 단어 때문인지 지나치게 기독교적-혹은 종교적?- 색채가 풍겨지기 때문에, 늘상 비슷하고 뻔한(?) 얘기를 장황설로 늘어놓을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읽지 않으려했다. 친구가 빌려준 책이긴 했지만, 읽지 않고 돌려줄까 하다가, 그래도 무슨 책인지는 봐야지 하는 생각에 책을 펼쳐들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만약 이 책을 안 읽었다면, 그리고 후에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를 알게 되었다면- 책을 안 읽고 좋은 책인줄 알게되는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마치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발로 차버린 것 같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리라.
마치 강의노트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는 목차에서부터 느껴졌다. 보통 단행본과는 다르게, 목차에서부터 1, 1), (1), * 등 여러 서식이 사용되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형형색색의 필기구를 사용해 중요해보이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으며 여백에 필기를 하고 싶은 충동도 여러번 느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라 그런지, 의과대학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부담없이 읽을 거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여러번 강조하는 것 까지도. 그리 많지 않은 분량(190페이지)에 이만한 내용을 담은 것은, 수백페이지 분량의 책에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과 비교가 된다.
책의 구성이 간결한 것에 비해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단호하고 직설적이기보다는 정신과 의사 특유의 세심하고 조심스러움이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좁은 의미의 구원을 받은 직후-구원을 '받은 후'가 아니라 '받은 직후'- 마치 인격이 완성되는 것처럼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기대라는 점이다. 책에 나온 비유를 소개한다면, 성경에서는 '누가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10리를 같이 가라'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 10리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누가 3리를 기꺼이 가겠다고 하면, 현재 한국기독교의 분위기로는 '저 사람은 3리 밖에 못가는 사람 = 성경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죄받는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구원받은 후에 신앙과 인격이 (천천히) 자라가면서 결국은 10리를 기꺼이 갈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현재는 3리를 가지만 후에 인격과 신앙이 더 성장하면 10리를 가게 될 사람'이라고 보기보다는, 저 사람은 3리만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설명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면, 책을 직접 사서 읽으시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터이니. 또 결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터이니...
책 후반부에 '한국의 기독교가 극복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 기복 지향에서 인격지향으로'라고 10페이지가량 쓰인 글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구구절절 맞는 말씀뿐인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 기독교 개혁을 위한 선언문'정도로 채택을 하면 좋을 듯 싶다. 물론 '나'를 위한 선언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동안 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은 몇권 읽어보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의 매력을 많이 느끼면서도 실제 내가 배운 정신과와 너무도 다르기에 외국의 정신과는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가 생각했다. 그런데 김진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니, 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느꼈던 매력 이상의 매력이 느껴진다. 읽을 수록 김진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도 느껴지고. 아마 기독 전문인이 해야 하는 일이 이와 같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것인가. 비단 진료와 집필 뿐 아니라 강의도 하시고 수련회까지 인도하셨다는데, 무슨 무슨 일을 했다는 자체보다도, 자신의 소명(목표)을 갖고, 그것을 위해 분주히 사시는 모습이 멋지다.
지난 여름 라브리에 있을 때, 성인경 목사님과 식사하던 중에 목사님께서 나에게, 장차 미래의 리더쉽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라는 권면을 하신 적이 있다. 그 권면의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이 리더쉽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주도층에 속할 것이고 영적으로도 주도층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목사님 말씀은 내가 한 영역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분야에 관련된 기독인 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정신과 김진 선생님처럼, 서사모아에 계신 소아과 김영진 선생님처럼.
나는 과연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또 소아과 의사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책 제목에서 '중생'이란 단어 때문인지 지나치게 기독교적-혹은 종교적?- 색채가 풍겨지기 때문에, 늘상 비슷하고 뻔한(?) 얘기를 장황설로 늘어놓을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읽지 않으려했다. 친구가 빌려준 책이긴 했지만, 읽지 않고 돌려줄까 하다가, 그래도 무슨 책인지는 봐야지 하는 생각에 책을 펼쳐들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만약 이 책을 안 읽었다면, 그리고 후에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를 알게 되었다면- 책을 안 읽고 좋은 책인줄 알게되는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마치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발로 차버린 것 같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리라.
마치 강의노트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는 목차에서부터 느껴졌다. 보통 단행본과는 다르게, 목차에서부터 1, 1), (1), * 등 여러 서식이 사용되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형형색색의 필기구를 사용해 중요해보이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으며 여백에 필기를 하고 싶은 충동도 여러번 느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라 그런지, 의과대학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부담없이 읽을 거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여러번 강조하는 것 까지도. 그리 많지 않은 분량(190페이지)에 이만한 내용을 담은 것은, 수백페이지 분량의 책에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과 비교가 된다.
책의 구성이 간결한 것에 비해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단호하고 직설적이기보다는 정신과 의사 특유의 세심하고 조심스러움이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좁은 의미의 구원을 받은 직후-구원을 '받은 후'가 아니라 '받은 직후'- 마치 인격이 완성되는 것처럼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기대라는 점이다. 책에 나온 비유를 소개한다면, 성경에서는 '누가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10리를 같이 가라'고 하고 있는데, 실제로 10리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누가 3리를 기꺼이 가겠다고 하면, 현재 한국기독교의 분위기로는 '저 사람은 3리 밖에 못가는 사람 = 성경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죄받는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구원받은 후에 신앙과 인격이 (천천히) 자라가면서 결국은 10리를 기꺼이 갈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현재는 3리를 가지만 후에 인격과 신앙이 더 성장하면 10리를 가게 될 사람'이라고 보기보다는, 저 사람은 3리만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설명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면, 책을 직접 사서 읽으시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터이니. 또 결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터이니...
책 후반부에 '한국의 기독교가 극복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 기복 지향에서 인격지향으로'라고 10페이지가량 쓰인 글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구구절절 맞는 말씀뿐인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 기독교 개혁을 위한 선언문'정도로 채택을 하면 좋을 듯 싶다. 물론 '나'를 위한 선언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동안 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은 몇권 읽어보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의 매력을 많이 느끼면서도 실제 내가 배운 정신과와 너무도 다르기에 외국의 정신과는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가 생각했다. 그런데 김진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니, 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느꼈던 매력 이상의 매력이 느껴진다. 읽을 수록 김진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도 느껴지고. 아마 기독 전문인이 해야 하는 일이 이와 같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것인가. 비단 진료와 집필 뿐 아니라 강의도 하시고 수련회까지 인도하셨다는데, 무슨 무슨 일을 했다는 자체보다도, 자신의 소명(목표)을 갖고, 그것을 위해 분주히 사시는 모습이 멋지다.
지난 여름 라브리에 있을 때, 성인경 목사님과 식사하던 중에 목사님께서 나에게, 장차 미래의 리더쉽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라는 권면을 하신 적이 있다. 그 권면의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이 리더쉽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주도층에 속할 것이고 영적으로도 주도층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목사님 말씀은 내가 한 영역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분야에 관련된 기독인 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정신과 김진 선생님처럼, 서사모아에 계신 소아과 김영진 선생님처럼.
나는 과연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또 소아과 의사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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