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의 조선회상, 셔우드 홀, 좋은 씨앗
4년전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를 읽으며, 중국을 향한 그의 사랑과 중국인들과 동화되고자 하는 그의 노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허드슨 테일러 같은 사람이 왔다는 것으로 중국에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있었다. 닥터 셔우드 홀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셔우드 홀의 조선사랑은 아버지인 닥터 윌리암 제임스 홀로부터 시작된다. 19세기 후반 은둔의 나라였던 조선에 들어와 선교기지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병원을 세우고, 자기가 치료하던 열병걸린 환자에게 전염되어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로 하늘나라로 간 윌리암 제임스 홀. 그의 둘째 아들로 조선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그의 부모님의 일을 이어나간다. 병원을 세우고, 그 당시 조선의 망국병이었으나 누구의 관심과 노력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던 병인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앞장선 인물. 해주요양원과 몇몇 병원을 설립해 결핵환자들을 격리치료하고 완치를 위해 교육을 하였다. 그들이 세운 병원들은 지금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고 이화여대 의과대학이 되었다. 헌금을 받아 해주요양원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결핵퇴치에 한계를 느낀 그는 당시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시작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조선에 도입한다.
어릴적 해마다 12월이 되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사던 기억이 난다. 닥터 셔우드 홀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씰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 닥터 셔우드 홀이며, 그는 조선에서 태어나 일제로부터 추방되기까지 헌신적으로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읽는 동안 솟아오르는 감동때문에 여러번 책을 덮었다. 닥터 윌리암 홀의 복음에 대한 열정에 감탄할 때마다, 닥터 셔우드 홀의 조선 사랑이 느껴질 때마다, 결핵퇴치를 위해 헌신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그릴 때마다. 닥터라면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미국의사는 우리나라보다도 더욱-, 그 편안함을 포기하고 굳이 험난한 선택을 한 셔우드 홀의 조선 사랑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 느껴진다. 편안한 삶을 영위하던 동시대 다른 의사들에 비해 험난하면서도 치열했던 그의 인생은 일견 손해인 것처럼 보인다. 치열했던 그의 삶 자체가 그에게 축복이었겠지만, 그의 말년에 하나님은 그에게 큰 선물을 주신다. 후에 셔우드 홀이 캐나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을 때 91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결핵협회의 초청을 받아 조선에 방문한다. 자기 인생의 절반을 쏟아부은 나라에서 40여년만에 초청을 받아 다시 방문하는 기쁨과 설레임. 한국방문 소식을 듣고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설레이며 준비하는 셔우드 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나도 가슴이 설레였다. 한국을 방문한 후 수년후 캐나다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친 그는, 한줌의 재가 되어 그가 태어난 땅 조선의 서울 양화진에 묻힌다. 그의 부모와 여동생, 아들이 묻혀있는 그곳에.
허드슨테일러가 있던 중국보다 셔우드 홀이 있었던 조선이 더 큰 축복을 받았다고 느낀다. 윌리암 홀 부부와 그의 아들 셔우드 홀 부부, 2대에 걸쳐 사랑을 받은 우리나라에게 닥터 홀 가(家)는 더할수 없는 큰 선물이었음을.
나 역시 아직 경험은 많지 않으나 환자를 보면서 큰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상처를 가지고 왔다가 상처가 빨리 낫도록 도움을 받은 후 퇴원하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할 때, 환자 입장에 생각해서 몇마디 염려와 위로의 말을 하였는데 감사를 받기 민망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하는 환자를 볼 때. 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자체도 내게 축복인데, 감사한 마음까지 받으면 내 지친 몸과 마음도 다시 힘이 난다. 하물며 한 나라를 아낌없이 사랑했고, 그 나라 국민들로부터 더할 나위 없는 감사와 사랑을 받은 셔우드 홀.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다른 나라의 '셔우드 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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