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종교 & 철학

[책] 침묵, 엔도 슈사쿠

오대식 목사님이 설교중에 소개해주셔서 읽게 된 책인데, 그동안 내가 신앙에 대해 고민해왔고, 고민하고 있는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를 존경하는 로드리고 신부가 일본으로 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런 간단한 스토리로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작가는 여러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었다고 하는데, 과연 대단하다.

 

1. 믿음과 행위

 

"이 농민들은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을 소나 말처럼 일하고 소나 말처럼 죽어갔겠지요. 저희 종교가 이 지방 농민들에게 물밀듯이 확대되어 간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로드리고가 포르투갈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얼마전, 어느 소아과 선생님이 자신이 신앙을 갖게 된 과정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연골무형성증(Achondroplasia), 흔히 말하는 난장이였던 증조모가 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천대받고 지내던 중, 당시 조선에 온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으로부터 처음 사람다운 대접을 받은 후, 그가 믿던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과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며칠 동안 깊은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실제로 가능할까. '행위 없는 믿음'이 실제로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교회를 오래 다닌 것에 관계없이, 겉으로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나의 믿음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2. 페레이라 신부의 고민

 

"마카오나 고아에 있는 수도원에서 이 나라의 선교를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 데우스와 오오히(日天)를 혼동한 일본인은 그 때부터 우리의 하나님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런 다음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 언어의 혼란이 없어진 뒤에도 이 굴절되고 변화된 신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거야. 자네가 아까 말한 포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 거지."

 

페레이라 신부는 20년동안 선교를 하면서 40만의 가톨릭교도가 생겼지만, 결국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자기가 전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과 다르다고 로드리고에게 말한다. 이 말의 진실 여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만, 적어도 내게도 페레이라 신부의 지적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내 신앙심에는 분명히, 성경의 하나님을 순수히 따르기보다는, 그 분을 통해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교회 열심히 다녀서 출세하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3. 기지치로

 

"신부님,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약해요. 마음이 약한 자는 순교조차 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아, 왜 내가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나요?" 

                                                                                     -기지치로가 로드리고에게 고해성사하는 장면에서-

 

소설에 '기지치로'라는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인 가톨릭 신도이지만, 다른 신도들과 신부에게 도움을 주다가도 결정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순간에는 배교하여 그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그 후에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믿음없음을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처음에 로드리고 신부는 기지치로의 도움으로 일본의 신도들을 만나고 포교활동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의 고발로 신부는 관가에 잡히게 된다. 그러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로드리고의 곁을 맴돈다. 결국 예수를 판 유다처럼 '혐오'스러워하지만, 소설 끝부분에서 로드리고는 기지치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박해를 받는 시대가 아니면 저 남자(기지치로)도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가톨릭 신도로서 일생을 보냈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 한켠에서 거슬렸던 인물이다. 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은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없지만, 만약 내가 100년전, 200년전의 한국, 아니 조선에 살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 당시 조선에 갓 들어온 기독교를 접했더라면, 아마도 나는 기지치로처럼 살지 않았을까.

 

4. 선교

 

소설은 선교사로 일본에 온 로드리고 신부의 내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일본인 가톨릭 신도들이 숨어서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읽으면서, 내가 참 편하게 기독교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사치라고 할까? 

 

5. 침묵

 

소설에서는 답하기 어려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가톨릭 신도들이 믿음을 지키다 죽어가는데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들의 죽음이 영광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그들이 죽은 후에도 세상은 이렇게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라고 농민들의 순교를 보며 로드리고 신부의 고민을 통해 질문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책에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그런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책에서 나오는 대로 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이 질문은 소설의 제목이 된다.

 

또 한가지는, '신부가 배교하지 않는다면 저들(신도)을 괴롭게 죽게 하겠다, 배교하면 저들을 풀어주겠다', 이에 대해 신부입장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더군다나 신도들이 그 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배교하면 된다고 한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느 한가지 선택이 맞다 틀리다 라고 할 수 없는 화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