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성인의 회심기
이어령씨가 믿음에 대한 책을 내셨다기에, 그 분이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쓰셨을까 내심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의 의미와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없이 '믿어보니 좋다'는 식으로 단순화 시킨 회심기는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그 분이 대학교수와 문화부장관을 지내신 시대의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사회 최고위층을 지내신 분에게 어떤 삶의 어려움이 있었을까 싶은 어리석고 속좁은 생각을 한 셈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내가 읽어본 몇 권의 책에서 회심과정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면서 신앙위인들은 어떻게 믿었는지 궁금해서 찾아 읽었던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우찌무라 간조의 회심기,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 같은 자서전/전기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이유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혹은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에 대한 괴로움을 어떻게 접근했는지와 같은 심경의 변화는 자세히 기술하지 않고, '어느날 어떤 사건 혹은 성경을 계기로 믿게 되었고, 그 날부터 삶이 달라졌다'는 식의 기록이 많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이소벨 쿤의 '추구'에서는, 다소 감정적으로 치우치긴 했으나, 그의 심정의 변화를 상세히 기술했기 때문에 읽으면서 큰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읽은 이어령씨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저자가 믿음을 갖게 되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생각의 변화를 차분히 정리한 책이다.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할 정도로 문학과 문화에 탁월한 실력을 가진 저자가 자신의 문학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쓴 회심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책 제목만 보고 가졌던 오해는 서문을 읽으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욕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갑자기 성인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내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서언중에서)'
요즘 인터넷에서 기독교가 아닌 '개독'이라는 비난을 받을 때, 그들의 비난이 이해되면서도 비난하는 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잘한 게 없으니 욕을 들어도 마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소리가 귀에 달게 들리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세줄의 글로, 비난하는 사람들과 비난받는 기독교인(나)을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다.
2. 고통의 문제
'이 바보야, 너에게 이런 고통을 내려 계속 시험을 하시는 주님이 그렇게도 좋으냐. (p.122)'
사랑하는 딸에게 일어난 고통, 두 번의 갑상선암, 시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진단, 자녀의 자폐증... 모두가 부러워하던 미국 변호사가 된 이어령씨의 딸에게 이런 고통이 있었다. 자신의 고통도 힘들지만, 사랑하는 딸의 고통을 옆에서 보는 것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 죄 때문인지, 연단을 위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어려움의 일부는 죄 때문에, 일부는 연단 때문이라고 하면 동의할 수 있지만, 전체로 확대시키면 동의하기 어렵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 중 일부는 사람을 연단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되지만, 모든 사건이 연단을 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모든 어려움이 연단을 위한다면, 호랑이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살아남은 강한 자식만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일 아닌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해답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께 물어봐서 듣기로 하고 일단 미루어 놓는다.
3. 아웃사이더가 본 교회
영원히 죽지 않는 빵, 생명의 빵인 예수님을 옆에 두고 오병이어를 기적이라고 하여 벌판에 모여드는 사람을 보실 때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우셨을까.(p.126)
아내가 모태신앙인이었지만 지난날 내가 교회에 가지 않았던 것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입니다.(p.154)
지체가 높은 제사장이라고 해도 혈통이 고귀한 레위인이라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피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사마리아인만 못한 이웃입니다.(p.19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독교를 모른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어떻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 귀를 막겠습니까.(p.194)
타고난 지적인 성격 때문이신지, 딸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례를 받기 전 젊으셨을 때부터 비판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읽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것들이 날카로우면서도 옳은 말 뿐이다. 올리는 기도의 대부분이 좋은 직장, 돈, 건강을 구하는 나의 기도나, 교회를 오래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으면 남들보다 신앙이 좋아 보일거라고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사랑은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지적당했다.
오대식 목사님은 설교에서, 사람들이 (제일 높은 직분이라고 생각하는) 장로가 되려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이를테면 회사 사장, 임원 같은 고위직, 혹은 판검사 의사 같은 전문직종의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장로가 되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라도 인정을 받고 싶어서 장로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앞으로 교회에서 직분을 받지 않겠노라고. 교회 몇년 착실히 다니면 교회 내의 규정 덕택에 나 같은 사람도 '집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안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그래도 직분을 받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때도 간혹 있지만, 성경에서 나온 집사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난다.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명의 집사가 처음 임명된 계기는, 교인들에게 사랑으로 구제를 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스데반 집사처럼 살 수 있을까? 아니다. 혹시라도 스데반 집사님처럼 성도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때 진짜 집사가 되어도 늦지 않다.
4. 조슈아 벨과 신포도 이야기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두가지가 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중에 조슈아 벨(Joshua Bell)이라는 사람이 있다. 뛰어난 연주실력 외에도 잘생긴 외모로 '엄친아' 소리를 듣는 인기있는 연주자이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는데, 조슈아 벨이 Washington D.C 지하철 입구에서 아침 출퇴근길에 거리의 악사처럼 행색을 하고, 즉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청바지에 긴T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쓰고, 바닥에 지폐와 동전 몇 개를 바이올린 케이스에 담아놓고서, 1713년에 제작되어 크라이슬러가 사용했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를 들고 연주를 한다.
워싱턴포스트 원문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7/04/04/AR2007040401721.html
중앙일보 기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688673
유튜브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myq8upzJDJc
출퇴근길에 43분간 6곡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1097명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딱 한 사람, Stacy Furukawa(Demographer)라는 여자만 그를 알아보고 그의 음악을 듣는다... 연주하는 동안 그에게 적선(?) 된 돈은 32.17$.... 그의 연주를 공연장에서 들으려면 좌석 하나에 100$가 필요한데 말이다. 참고로 올해 여름에 내한공연을 했는데, 그때 티켓가격이 16만원(R석)이었다...ㄷㄷㄷ... 가고 싶었지만 가격이 부담되서 가지 못했다.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고 겉치장에 얼마나 마음을 많이 빼앗기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한가지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현대에는 좀 달라졌다고 한다.
여우가 포도를 먹었는데, 신 맛을 가진 포도였다. 더이상 신포도를 먹지말고 뱉어야 하는데, 주위에 있던 동물들이 무척 달달한 포도인 줄만 알고 여우를 부러워한다. 여우는 주위의 부러움 때문에 신포도를 뱉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계속 신포도를 먹기만 한다... 주위에서 '누구가 장관 아들이래, 누구 아들이 XX회사 사장이래, 누가 XX대학교수래'와 같이 부러워하기 때문에, 정작 당사자는 그 일을 하는 것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공의 때 가까이서 모셨던 교수님들의 삶도 비슷해보였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물론 일로 인한 보람도 있지만), 과중한 업무와 연구성과에 대한 압박 등으로 힘들어하셨고, 쉬고 싶지만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5.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가 외람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세속적으로 편안하게 살던 것을 끊고 떨어지는 추락의 경험과 아픔이 없으면 주님을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p.232
현대인들도 증거 없으면 믿지 않는다고 하지요. 오늘날의 교회나 목회자들이 창 자국이 없고 못 자국이 없을 때, 증거할 능력이 없을 때, 어떻게 신자들이 믿겠냐는 것입니다. p.233
스무살 무렵, 어떤 선배가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적이 있다. 근데 이 바보(나)는 그 때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 그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인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지, 아직 믿음의 끈을 완전히 놓고 있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교회 다니는 것은 쉽지만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만큼 나에게는 돈, 명예, 권력, 그리고 안정을 추구하는 본성이 크다.
6. 딸 이야기
책 뒷부분에는 저자가 강연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고, 딸(민아氏)의 간증이 적혀있다. 어떻게해서 그렇게도 깨끗한 믿음을 가졌을까 궁금했는데, 그분도 처음 믿을 때는 자신에게 기복신앙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삶의 고통을 겪으면서 QT를 통해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고 한다. (솔직히, 민아씨가 겪은 고통의 시간을 따라 읽는 게 힘들어서 책장을 그냥 넘겼다).
젊었을 때 성경을 읽으며 기독교에 대해 비난했던 저자는 자신을 '회개하지 않은 탕자'라고 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이어령씨가 '탕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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