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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이라는 정신과의사가 2차대전중에 나치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수용소에서 힘들었던 삶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속에 담긴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까지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다.

 

 

1. 삶의 의미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치료)에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수 있다고 하였다.

 

1) 창조성 :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일을 함으로써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느껴지는 기쁨. 비단 대단위 사업이나 연구 업적,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거창한 것 뿐 아니라, 오늘 저녁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요리처럼 소소한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2) 즐거움 :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자연이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 같은 것을 말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되는데, 특히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인간성을 가장 깊이까지 파악할 수 있고,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3) 시련 :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창조성과 즐거움 외에도,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창조성과 즐거움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시련에서의 삶의 의미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없진 않다. 소소한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다고는 생각하지만, 극한상황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극한상황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Dr. Frankl이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나치수용소라는 극한상황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실존적 좌절'에 부딪힌다고 하였다. 그래서 실존적 좌절에서 벗어나려면 삶의 의미를 찾아야 된다고 하였고, 그는 logotherapy를 통해 위의 3가지의 형태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Dr. Frankl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 나는, 다분히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정신과의사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과학적이며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질면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자리가 있다. 거기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라는 파스칼의 고백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창조성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물려받은 특성이라고 생각이 되고,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통해 기쁨을 누리는 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 수용자의 여러가지 인간군상

 

'인간의 자애심은 모든 집단, 심지어는 우리가 정말 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이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천사, 저 사람들은 악마라고 부르면서 문제를 단순화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p.151-2

 

그의 말처럼, 사람의 성격도 정규분포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보통 의학에서는 통계치의 2표준편차(약 3percentile)에서 벗어나면 이상(abnormal)이라고 본다. 이를 테면 5살 남자아이의 체중은 15-24kg정도를 정상이라고 보는데, 15kg이 안되거나 24kg이 넘으면 비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화하기 어려운 사람의 특징들, 즉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도 (만약 객관화할 수만 있다면) 정규분포를 이루는 것 같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중 2-3명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고매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반대쪽 2-3명은 주위에 피해만 입히며 살거나 강력 범죄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내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무난한 사람들이지만, 2-3명 정도는 정말 심성이 착하고 예의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2-3명은 속칭 KBS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막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의 특성이 정규분포를 이룬다는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일하다보면 가끔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거나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 '이 사람만 넘기면 당분간 괜찮은 사람들만 오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면 표준편차에서 벗어난 '이상한(abnormal)'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살게 해주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표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삶의 일회성

 

'인간은 대개 그루터기밖에 남지 않은 일회성이라는 밭만 보고, 그 행동과 기쁨과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구원해준 과거라는 곡창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볼 수 있다.p.198-9

 

나이가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내 인생의 반 이상 지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서른이 될 때까지는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요즘에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생겨서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즐거웠던 시간들이 언제였나 생각해 볼 때가 종종 있는데, 우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이고, 교회에서 보냈던 사춘기시절과, 그 때는 몰랐지만 풋풋했던 20대 초반 등의 시간이 기억난다. 힘들었던 인턴 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더 힘들었던 레지던트때는 아직 좋은 기억으로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좋은 추억이 된 그 시간들을 그 당시에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예전에 형처럼 친하게 지내던 교회 전도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네가 힘들어하고 있는 일이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좋은 추억이 되어 있을 거야. 그때쯤이면 너를 힘들게 했던 사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이 되어 있을거야'.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깊이 이해가 된다.

 

이런 생각을 프랭클이 잘 정리했다. 마치 가을날 추수가 끝난 논을 보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좌절하기보다, 모내기할 때부터 여름의 강렬한 햇빛과 폭풍우를 이겨내고 풍성한 열매를 맺던 아름다운 시간을 추억하듯이, 인생도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알려준다. 내가 사는 관사 주위가 온통 논이다. 출근할때마다 논을 보면서 출근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비유가 마음에 잘 와닿는다.

 

정신과의사가 쓴 책은 다른 사람이 쓴 책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이다. 빅터 프랭클의 책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정신과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인문사회과학보다는 자연과학쪽이 적성인 내가 두리뭉실 뜬구름 잡듯이 생각하는 것들은, 정신과의사들은 깔끔하게 정리해서 표현하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신경이 없어서 스포츠는 잘 못하지만, 스포츠 경기는 즐겨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