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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책] 고통의 문제, C.S.Lewis, 홍성사

The Problem of Pain
C.S. Lewis

 

  다른 직업도 대개 그러하겠지만, 의사란 직업을 가지고 최선과 최적의 진료를 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만 한다. 수능을 보기위한 고3시절, 혹은 시험공부를 하며 수없이 밤을 지새웠던 의과대학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에 쏟는 이상의 에너지를 공부에 사용해야만 쏟아져 나오는 최신의학에 겨우 보조를 맞출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대개 공부할 자료로 교과서를 애용한다. 교과서도 종류과 그 권위가 다양한데, 대부분의 소아과의사들이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책 중에 'Nelson소아과학'이란 책이 있다. Nelson소아과학으로 공부를 하면 주옥같은 의학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실제 진료를 하기에는, 역설적으로, 너무 빈약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는 Nelson소아과학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절대 아니라, 방대한 의학지식을 담기에는 지면이 너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요새 유행하는 독감(인플루엔자, Influenza virus)에 관해 Nelson소아과학에서는 전체분량 3000여쪽 중에 단 3페이지의 분량에 요약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감염질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나온 책, 이를테면 미국 소아과학회(AAP) 감염위원회에서 발간하는 RED BOOK같은 책에서는 인플루엔자에 대해 12페이지(전체 900여페이지 중에)를 할애하고 있다. 이정도의 정보로도 부족하면 더 자세히 나온 자료를 찾는데, CID(clinical infectious disease)라는 잡지에서 나온 계절독감 가이드라인은 약 30쪽 정도의 정보를 담고 있다. 사실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최소한 이정도에 따라 진료하면 크게 잘못하는 것 아니다'라는 의미이기에 더 깊이 들어가자면 밑도끝도 없다. 혹시 독감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겨우 12-30페이지밖에 안되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30페이지 문서를 이해하기 위해 6년 이상의 시간동안 배경지식을 쌓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Nelson소아과학 같은 경우는 질환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기 좋은 반면 병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 깊이 있게 알기에는 조금 부족할 때가 있고,  이런 경우 전공에 따라 더 세분화된 책(소아피부과학, 소아감염병학, 소아소화기질환 같은)이나, ****가이드라인 이라고 나오는 자료를 공부하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지식을 갖게 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통해 재미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일부 관심분야에 한해서, 세분화된 교과서나 가이드라인으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십 페이지 이상의 가이드라인으로 공부를 하고나서 다시 Nelson소아과학의 관련부분을 보면 '핵심적인 내용을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를 해 놓았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물론 혼자서 모든 분야를 이런 깊이로 공부할 수 없다. 혼자서 모든 분야에 깊이있는 공부를 마치려면 인간의 수명이 300살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 힘들게 모든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마쳐 놓으면 공부하는 2-300여년동안에 발전한 의학지식을 새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유명한 대학병원의 의사중에 한 분야의 대가를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모든 분야의 대가는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모든 분야의 진료를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곳(특히 일부 한의원)은 대체로 의사실력에 비해 허위과장광고인 경우가 많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기 때문에 연수강좌나 학회에서 많이 공부한 선생님의 강의를 찾아서 듣는 경우가 많고, 나처럼 게으른 사람의 경우 직접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열심히 공부한 것을 주워먹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C.S.Lewis의 책을 읽으면 마치 신앙의 한 분야에 대해 가이드라인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의사들이 NIH에서 나온 가이드라인을 신뢰하는 정도로, C.S.Lewis가 신학 분야에서 권위가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일반인의 쉬운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그 정도 권위를 누릴 만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요즘 읽는 책이 C.S.Lewis의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인데,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25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성경에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나같이 이해를 잘 못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C.S.Lewis같은 사람들이 책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 고통의 문제에 대해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50여쪽의 책을 기껏해야 A4 한두장으로 요약한 것을 읽기보다는,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본문을 읽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C.S.Lewis는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본문을 일부 인용해본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C.S.Lewis는 이해를 위해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한다.(pp.63-74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의 선함은 거의 예외 없이 사랑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이 문맥의 사랑을 친절kindness-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로 이해한다는데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마음에 드는 하나님이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너만 만족을 느낀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말해 주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중략)

  심지어 요즘에도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애가 인생을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불량배가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중략)
  이러한 사랑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단순한 친절을 넘어서는 분임이 분명합니다. 또 모든 기록을 볼 때, 그가 우리를 꾸짖고 책망하신 적은 자주 있었지만, 우리를 경멸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중략)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가 깨끗하든 더럽든 아름답든 추하든 신경쓰지 않게 됩니까? 오히려 그제서야 비로소 그런 점들에 신경을 쓰게 되지 않습니까? 남자가 자기 외모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사랑의 표시로 여길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사랑은 그 연인이 아름다움을 잃어도 사랑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을 잃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용서해 줄 수 있고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지만, 그 허물을 없애 주겠다는 결심을 접지는 않습니다......(중략)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무관심한 나머지 '사심없이' 우리의 복지에 신경 쓰신다는 뜻이 아니라, 두렵고도 놀라우며 참된 의미에서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된다. 책 서문에서 Lewis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는 많은 지식보다 작은 용기가, 큰 용기보다 적은 인정(人情)이, 그리고 이 모든 것 보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사랑이 더 도움이 된다는 확신 외에는 독자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약간'의 지식은 '하나님의 가장 작은 사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