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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책] 순전한 기독교, C.S.Lewis

 

1. 왜 이책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라고 알려진 C.S.Lewis. 그의 잘 알려진 책 '순전한 기독교'를 다시 읽었다. 3년전 처음 읽었을 때도 좋은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 다시 읽으니 '아,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교회를 어렸을 때부터 다니긴 했지만,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큰 관심없이 기독교 외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다닌 내가, 스무살이 되어 새로운 세상, 아니 '본격적인' 세상을 접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하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릴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하루하루 만나는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그 때, 그래서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힘들었던 그 때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당시 내가 믿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대'였다. 다른 것 안보이고 내 계획만 보이던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이라는 존재가 책 한 두권읽고 쉽사리 바뀌는 존재가 아니긴 하다만.

 

2. 정직한 질문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사는게 왜 힘든가, 일이 잘 안풀리는가"

"하나님이 어디 보이는가, 어디서 느껴지는가"

"성경은 잘짜여진 환타지소설 아닌가. 원래는 별것 아닌 이야기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믿어서 지금의 거대한 종교가 된 것이 아닌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타종교인은 무조건 배척해야하는가, 심지어 '사탄'의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되는가"

"안믿어지는데 무조건 믿는 척이라도 해야 되는가, 아니면 당당히 '안믿어진다'고 해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왜 더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소심하고 때로는 치졸하기까지 하는가"

"술, 담배는 구원과 상관없다고는 하면서도 왜 술,담배하는 사람은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가"

 

이런류의 질문들... 어떤 것은 정직한 수준을 넘어서 공격적인 질문도 있긴 하지만, 교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세상을 처음 접할 때 느껴졌던 의문들이었다.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꽤 흘러서 상당 부분 잊어버리기도 했고, 그보다는 사실 그사이에 해결된 질문이 더 많다. 그런데 그때는 이런 의문에 대해 속시원히 설명을 들을 수 없던 것이 참 힘들었다. 이런 내 고민과 의문을 가까이에서 들어줄만한 사람은 대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내 주위에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이런 고민 없이 '저절로' 믿어진 것처럼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이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의문품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기도 했었다.

 

일부 질문은 2002년, 스물 네살때 다녀왔던 라브리에서 풀렸다. 또 상당한 수의 질문은 나를 오랜기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해준 한 형제 덕분에 풀렸다. 그 형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내가 가진 질문을 같이 고민하며 풀어보고자 수 년간 같이 교제를 했는데, 그 시간동안 그야말로 '저절로' 풀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난 15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질문에 대해 대답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순전한 기독교'에 보니, 내가 가졌던 많은 질문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이 정리된 것이 아닌가. 어쩌면 내 스스로 수년간 고민을 하고 답을 찾으려 했던 것들이라 책이 쉽게 읽혀졌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 자체를 인정하고, 깊은 고민끝에 정리된 대답이 있는 책을 만났다는 것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3. "순전한" 기독교 

읽기전에는 '순전한'이라는 말이 혹시라도 '깨끗한', '순결무구한'이라는 의미로 쓰인가 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흠이 없고 깨끗한 종교라고 주장하기 위한 책인가 싶었다. 조금 읽어보니 그런 뜻은 전혀 아니고, '교파마다 이견이 있어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즉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책이다.

 

4.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한 저자

 

철저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무신론자였던 C.S.Lewis. 그래서 그가 회심하기까지의 긴 생각의 여정이 이성적인 분석과 적절한 비유로 정리되어있다.  그대신 그는 지엽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피하고, 가능하면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읽는 내내 나를 감동시킨 부분이 여러군데 (사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있는데, 몇몇 부분을 발췌해본다.

 

p.36

한 본능이 다른 본능보다 강화시키려 드는 것은 분명히 본능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피아노 건반 키 자체가 자신을 다른 키보다 더 크게 치라고 지시할 수는 없습니다... 도덕률은 본능 중 하나도 아니고 본능을 모아놓은 것도 아닙니다. 도덕률은 본능들을 지휘하며 일종의 곡조(우리가 '선'이나 '옳은 행동'이라고 부르는 곡조)를 만들어 내는 어떤 것입니다.

 

p.69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고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신론자라면 '세상 모든 종교를 지탱하는 중심점은 하나의 거대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 거리낌없이 '모든 종교는 아무리 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해도 최소한 진리의 단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물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에서 기독교는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산수를 할 때 그렇듯이, 맞는 답은 하나이며 나머지는 다 틀린 답입니다. 그러나 틀린 답들 중에도 비교적 정답에 근접한 답이 있는 법입니다.

 

p.96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효력을 갖느냐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이론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효력을 갖는다는 사실 그 자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p.102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은 이를테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처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아이의 손을 붙들고 함께 글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그 글자가 쓰여지는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쓰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사랑하고 추론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추론하시기 때문이며, 그가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p.132

'절제'(Temperance)는 불행히도 그 의미가 변질된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 이 말은 대개 '절대 금주'(teetotalism)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요.....

그리스도인은 전부 절대 금주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절대 금주를 요구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회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한테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술을 삼가는 것이지 남이 술마시는 것을 죄로 생각해서가 아니라는 것... 특정 부류의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자기들이 포기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이유로 어떤 것-결혼이든 고기든 술이든 영화든-을 포기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는 순간, 혹은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순간, 그는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p.153

사람이 선해지면 선해질수록 자기 안에 남아있는 악을 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자신의 악을 깨닫지 못하지요. 어느 정도 악한 인간은 자기가 그리 좋은 사람은 못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악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취하지 않았을 때는 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취해있는 동안에는 모릅니다...

 

p. 186

어떻게 어떤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면서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몇 년 후, 제가 평생동안 그렇게 대해 온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p.193

제가 성도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도덕은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그 중심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입니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5. 성경이해를 위한 참고서

 

같은 text를 읽어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테면 구약성경 욥기를 읽는다치면, 어떤 사람은 가장 인상적인 말씀으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을 꼽는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성공하기 바라는 기도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같은 욥기를 읽고 나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장 5,6절)'는 말씀을 마음에 남기려고 애쓴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각자 원하는 바가 이렇게 다를까

 

사람의 교만을 낮추는 것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고난이겠지만, 진리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육상선수가 무작정 체력을 키우고 달리기연습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때로는 경험많은 코치나 선배로부터 훈련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이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그래서도 안되고), 성경을 읽는 내 눈에서 욕심으로 얼룩진 시야를 상당히 걷혀내는데 도움이 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