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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영화

[영화] 내 이름은 칸

1. 야스퍼거 증후군

ASD(자폐 스펙트럼 장애, 자폐증, Autistic spectrum disorder)의 하나인 야스퍼거 증후군(Jasperger syndrome)을 다룬 영화.

야스퍼거 증후군은 초기에 모르고 지나가서 나중에 진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가 야스퍼거 증후군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았다. 메이저 과목(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을 전공한 의사에게 마이너 과목은 생소하기만 하다. 임상에서 접하는 경험이 많지 않을 뿐더러, 간혹 있다 하더라도 해당과목 전문의에게 의뢰하기 때문에 질환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소아과를 전공한 나에게는 정신과도 비교적 생소한 분야이다. 그러나 엄밀히 하면 야스퍼거 증후군은 어릴 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직업과 관련된 질환이기도 하다.

  일반인보다는 덜 하겠지만, 나에게도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이 없을 리 없다. 아마도 내가 정신과의사들처럼 환자의 어려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었는데, 영화를 한 편 보고 편견은 사라졌다. 학생이었던 2002년, 정신과 강의를 듣기 전에 영화 '뷰티플 마인드 Beautiful Mind'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정신분열병이 있는 사람에게 들리는 환청(auditory hallucination), 특히 자기에게 명령하는 소리(commanding voice)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신이 나뉘어(분열되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았다.

  '내 이름은 칸'의 주인공이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고나면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2. 비언어적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의 장애

야스퍼거 증후군을 비롯한 ASD의 특징이다. 사실 이 말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깊이 이해가 된다. 말뜻은 그대로 이해하지만, 말뜻 말고는, 이를테면 제스츄어나 뉘앙스 같은 것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이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임상경험이 그나마 있는 전문과목은 책의 내용을 거의 모두 이해할 수 있지만, 전문과목이 아닌 경우는 책 속에서 얻는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3. 종교

  이 영화는 9.11테러, 이후 이라크전쟁과 그로 인해 미국내에서 차별을 받게 된 무슬림의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전에 교회에서 또는 선교단체에서는 나에게 전도를 하도록 가르치곤 했다. 아마도 믿음의 선배들이 나에게 복음을 잘 가르쳐 주었겠지만, 내가 믿음이 없고 성경에 대해 잘 몰라서 전도를 하지 않았다. 안했다는 것보다는 못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전도는 말로 전달되는 것보다는 삶으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아직 복음을 전할 정도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복음 자체의 능력이 있어서 내 삶에 상관없이 전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독교의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양심에 걸리기도 하였고, 내가 기독교에서 진리의 빛을 찾아가게 된 계기는 말보다는 다른 기독교인이 나에게 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 섣불리 '말'로 전도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 전공인 의학, 소아과학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일들이, 한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가져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속담처럼, 실력없이 돈벌이를 위해,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해 일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일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테러를 일으킨 극단적 무슬림. 사람의 대한 사랑보다는 자기 종교의 교세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 그들의 종교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독교라 하더라도, 사람보다 교세를 중시하는 교인에게 그 종교는 더이상 진리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부류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교세, 혹은 교회를 통해 어떤 이익이 돌아올까에 대한 생각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지만, 요원하기만 하다. 기독교인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은 교인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은 직장 동료이며, 내가 진료하는 환자와 보호자이며, 무엇보다 나의 가족이어야 한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진리는 내 삶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4. 주인공

'샤룩 칸'이라는 인도 영화배우는, 마치 자신이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듯이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얼마나 많은 연구와 연기연습을 했을까. 훌륭하다. 물론 처음보는 인도배우지만-인도영화를 처음봤으니- 잘은 모르지만 자국내에서 우리나라의 김명민씨 정도의 연기력을 인정받지 않을까 싶다.

 

5. 아쉬움

  네이버 평점 9.33의 이 영화에서 내가 느낀 아쉬움이라면, 너무 영화 같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영화같다고 하면 그리 잘못된 말도 아니긴 하지만... 영화 시작에서 실화가 아니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감동적인 결론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시나리오를 짠 느낌이랄까...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들을 깊은 사랑으로 키우면서, 아들이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는 어머니. 이 세상에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며 수없이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부모님들이 있다. 정말 훌륭한 분들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미국에 있는 동생네 부부로 간다. 그런데 동생의 아내가 마침 심리학(?) 전공이어서 아주버님의 질환을 깊이 이해하고 기꺼이 돕는다. 훌륭한 제수씨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 같다. 이후 미국에서 화장품 판매하는 일거리를 구한다. 이것도 쉽지 않지만, 가족의 도움, 미국이라는 나라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이었으면 직업을 구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만나자마자 자기를 이해해주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모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모두가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이런 일들이 모두 일어나려면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더 언짢게 하는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뷰티플 마인드'라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비현실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따라서 감동도 더 많았다. 이 영화도 매우 좋은 영화이지만, 이런 점에서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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