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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영화

[영화] 플립 Flipped

YOU NEVER FORGET YOUR FIRST LOVE...

라는 영화포스터의 문구에 낚여서(?) 보게 된 영화, Flipped.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flip(flipped): 1. 홱 뒤집(히)다, 휙 젖히다   2. (기계의 버튼 등을) 탁 누르다   3. (손가락으로) 톡 던지다

 

그래...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는 첫사랑,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궁금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You never forget your first love라는 짧은 문장을 보고 기대한 것은 얼마전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보면서 느꼈던, 연애시절 밀당(밀고 당기기)의 감정이었다. 이제는 그런 '밀당'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놔두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현실이 되었지만, 올해 33살의 '나'는 잠시 제3자의 눈이 되어, 스무살의 풋풋했던(?) 과거의 '나'와 비교를 해보려는 심산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1. 풍경 전체를 봐야 한단다.

 

도대체 왜 '시라노 연애조작단'같이 유쾌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첫사랑'에 대해 다루기는 하지만, 가족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주는 성장영화였다. 밀당의 풋풋하고 유쾌한 감정도 곳곳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 잡았다면 이 영화의 70%는 놓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영화다. 물론 유쾌하기도 하다.

 

"항상 풍경 전체를 봐야 한단다. 그림에서 소는 그냥 소이고 초원은 그냥 풀과 꽃이고, 나무들을 가로지르는 태양은 한 줌의 빛이지만, 그걸 모두 한 번에 모은다면 마법이 벌어진단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한번 무지개같이 빛나는 사람을 만난단다. 네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더이상 비교할 수 있는게 없단다."

 

"할아버지는 부분이 합쳐져서 더 완벽한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셨다. 할아버지는 사람도 그렇다고 하셨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은 합쳐진게 부분만 못하다고 하셨다."

 

"최근까지는 그 애는 분명히, 확실히, 부분보다 합쳐진 것이 훨씬, 더 훨씬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애가 부분보다 합쳐진게 낫다고 내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부시는 눈을 본 순간, 처음으로 나는 그가 부분보다 합쳐진게 못하다고 확신했다."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 전체에 흐르는 철학을 담아내는 한 마디의 대사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영화에는 '풍경 전체를 봐야 한단다'는 명대사가 있었다.

 

2. 할아버지

 

언제부터인가 '시네마천국', 'Out of Africa' 같은,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영화가 좋아진다. 'Flipped'라는 제목의 이 영화도 여기에 포함될 것 같다. 영화에서는 주인공(브라이스) 할아버지를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키운 닭이 계란을 낳자, 줄리는 아끼는 계란을 브라이스에게 주는데, 줄리를 싫어하는 브라이스는 몰래 계란을 모두 갖다 버린다. 줄리에게 들켜 사이가 불편해지고 난후, 할아버지는 브라이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한 사람의 성격은 어릴 때 자리잡는단다. 네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게 나는 싫구나......

정직에 관한 거다. 손자야. 때론 처음에 조금 불편한 게, 나중의 많은 고통을 줄일 수가 있단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이어령 씨는, 혼자 지내던 일본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을 말하면서 당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방에 와서 괜히 헛기침 한 번 하는 것은, 외로워서 가족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영화 속 할아버지를 보니 문득 이어령씨의 글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가족과 같이 살지만, 외로워 보인다. 손자의 친구 줄리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회상하며, 줄리와 많은 이야기를 하며, 인생에 대한 지혜를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딸, 사위, 손자와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할아버지...그 장면에서 이어령씨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3. 선의의 거짓말과 호도된 진실(White lie & misleading truth)

 

요즘 EBS에서 하는 Michael Sandel교수의 'Justice'강의를 '천천히' 보고 있다. '천천히' 본다는 뜻은, 정규방송은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컴퓨터로 보면서 이해안되는 부분은 되돌려 본다는 뜻이다. 마침 이 영화를 보기 직전에 '7강 거짓말의 교훈'편을 봤는데, 임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은 옳지 않지만, 호도된 진실misleading truth은 용인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줄리의 계란을 몰래 버리는 브라이스. 그러면서 직접적인 상처를 줄까봐 계란을 거절하지 못하는 브라이스는 misleading truth로 위기를 넘겨 나간다. 결국은 줄리에게 모두 들키지만... white lie와 misleading truth,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4. 정원이 딸린 넓은 집

 

영화의 주제와는 별 상관 없지만, 영화의 아름다운 화면을 만드는데는 톡톡한 역할을 한다. 조금 과장하면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많은 인구가 대도시에 살고, 그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나도 그중에 한명이지만-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인상적이다. 조금 부럽다.

 

 ///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한 편 봤다.

성장기를 교회에서 보내온 나는 은연중에, 흔히 말하는 '영적'이지 않은 것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영적'인 것은 교회(기독교)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십계', '벤허', '예수' 같이 성경의 내용을 직접 언급하는 영화는 '영적'이라고 생각했고, 그 밖의 영화는 모두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원론이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인생에 대한 통찰로 감동을 주는 '시네마천국'이나,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 그리는 '불멸의 연인' 같은 영화도 영적이다. 이런 영화들을 통해 느껴지는 감동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확신한다. 꼭 '성경', '하나님', '찬양' 같은 말이 들어있어야만 영적인 것은 아니다. 영화 뿐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죄만 아니라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확신한다. 프랭키 쉐퍼가 쓴 책 '창조성의 회복'에서 그가 힘주어 강조하던 내용에 깊이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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