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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경제학 & 사회과학

DEVIL TAKE THE HINDMOST 금융투기의 역사 (2)


노동이나 기술이 아닌, 아무 노력없이 돈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일부의 경우 경제의 윤활유같은 역할을 해주겠지만, 모두가 돈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거품이 꺼질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모두가 편하게 돈을 벌 수는 없다. 다같이 부자가 되는 자본주의도 없다. 그런데 서민들, 중산층들의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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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미국 금권정치시대의 투기


일반투자자들은 작전세력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약점 때문에 끝내 무너지고 만다...그들은 정반대 종류의 흥분에 흔들리고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무너져내린다. 또 고점에서 사 저점에서 파는 우를 쉽게 범하는 경향이 있다....제임스 메드버리는 아마추어 투자자에 대해 "그들은 지나친 의심과 확신, 우둔함과 우유부단함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했다. p.253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는 네브래스카 주 콜롬버스에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주가가 50달러에서 5,000달러까지 솟구칠 것"이라고 광고했다. 이 회사는 한술 더 떠, "순식간에 목돈을 쥐고 싶습니까? 도시나 농장이 들어설 만한 땅을 찾아 사두세요. 뉴욕과 버펄로, 시카고, 오마하 지역에 땅을 사두지 않아 얼마나 후회했습니까!"라고 노골적으로 투기를 부추겼다. p.275



1874년 1월 뉴욕 톰킨스 광장에서는 실직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공황에 따른 불황은 1870년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1877년 전체 노동자의 5분의 1만이 정규직에 종사한 것으로 추산되었으며, 파업과 소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극에 달해 폭력사태로 이어졌다......이 즈음 복음주의자 무디(D.L. Moody)가 복음성가 가수 생키(I. Sankey)와 함께 연 종교집회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공황 전까지 월스트리트와 5번가에 몰려있던 군중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모인 것 같았다고 한다. p.279


메드버리에 따르면 "하루가 멀다하고 증권회사 직원들이 사기사건을 이유로 해고되었고, 가장이 공금유용 때문에 실직의 고통을 겪지 않은 금융계 집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펀드매니저나 신탁업자들도 고객의 재산으로 투기를 일삼았다. p.281


19세기 미국 증시에서 개별종목의 내재가치는 투기꾼들의 시세조종에 의해 감추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순진한 투자자들은 투자를 결정하는 데 요행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한 증시 전문가는 "주가가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한쪽 눈을 감고 동전을 던져보는 것"이라고 자조 어린 말을 했다. p.284



7장. 새 시대의 종말


사실 '자본주의가 새시대에 들어섰다'는 관념은 투기열풍이 몰아치는 시대마다 대유행했다. p.288


당시 사람들은 이전까지 발생했던 미국의 금융공황은 마지막 대부자인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더 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호황과 침체, 공황의 모든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따라서 은행가들과 투기꾼들은 이제 무책임하게 돈으로 장난질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29년 공황의 고통은 더 커졌다.  p.289


그는 "개인으로서 인간은 이성과 상식을 갖추고 있지만 군중 속에 있을 때는 바보가 된다"고 말한 독일의 극작가 실러의 말을 인용해 당시 투기꾼들을 비판했다.  p.316


군중의 지적 판단력 부족이야말로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맞춰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거나 심지어 조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초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인식의 부조화'라고 부른다. 집단 환상과 조화되지 않는 정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설득시켜 자신들의 통념을 믿게 만들려 한다. p.317


1990년대와 1920년대 투자자들은 주가하락을 '저점매수의 기회'로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떨어지는 주가는 곧 회복했고, 투자자들은 증시를 '불침항모'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검은 월요일'인 1997년 10월 27일 극에 달했다. 아시아 증시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우지수가 하루아침에 7% 폭락한 이날,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은 주가 폭락사태가 발생하자 1929년에 허버트 후버가 했던 "미국 경제의 펀더맨틀은 굳건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p.340


한 애널리스트는 1720년대 버블기업들의 주장을 연상시키는 말을 했다. "증시가 영구기관처럼 변해 주가상승이 계속적인 주가상승을 낳고 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볼 때 투기와 차입규모가 최고조에 달하고 영구기관이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새시대는 끝이 났다. p.345



8장. 카우보이 자본주의: 브래턴우즈 이후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 중단을 선언했다. 이로써 과거 25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왔던 브래턴우즈 체제는 종말을 고하고, 투기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브래턴우즈 시스템의 붕괴 이후 돈은 질량과 본질이 없는 상상의 조각물이 되었다. p.351-2


레이건이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를 창조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을 때, 그의 자유방임주의는 금융 투기꾼만이 부자가 되는 나라를 창조하고 있었다. 부자들이 세금감면 혜택으로 남아도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졸부들이 호화제품을 마구 사들이며 생을 즐기는 동안, 나머지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가 감소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p.369


하지만 각종 기록을 엄밀히 분석하면, 정크본드가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한 밀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투자적격채권에 대한 투자보다도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1980년대 정크본드 수익률은 145%였다. 이는 투자적격등급 채권수익률이 202%였고, 주식수익률이 207%였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한참 낮은 것이다. p.412



9장. 가미가제 자본주의: 일본의 버블경제


1980년대 말 거품이 극단적으로 커지자, 버블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몇몇 일본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돼 빈부차가 적은 나라'라고 여겼다. 하지만 자산가치의 상승과 투기가 낳은 부의 불평등 배분으로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p.456



역자 후기


자동차와 라디오의 등장으로 투기열풍이 불어닥친 1920년대 미국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영원한 번영을 구가하는 '신경제'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또한 철도투기 시대인 1840년대에도 당시 학자와 언론인들은 "철도가 인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 '하나의 인류'로 통합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무한정 확대될 것이고, 따라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해 영원한 번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동시대인들의 투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두 시대의 종말은 비극적이었다. 1929년 자본주의 종말과 같은 대공황으로 재즈의 시대는 끝났고, 1840년대 철도투기는 무수한 영국 중산층들을 파산상태에 몰아넣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사서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p.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