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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문학

죄와 벌, 도스또예프스키 지음,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죄와 벌(하)

저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성스러운 창녀, 고뇌하는 영혼, 모순의 아름다움러시아의 소설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드라마를 즐겨보는 심리와 소설을 즐겨읽는 심리가 비슷할까. 요즘들어 소설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소설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소설가들은 화를 내겠지만) 이제야 소설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말인즉, 같은 작품이라도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음악감상하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작품의 일부를 발췌하듯이 읽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2. 약 2주에 걸쳐서 틈틈히 소설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마치 철학, 신학, 정치학에 대해 한 학기 강의를 들은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있는 역자의 해설은 마치 시험보고난 후 듣는 정답 해설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독후감을 쓰던 나도 이번에는 정답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는 정도에서 정리하려한다.


3. 소설속 인물과 사상에 대해 잊혀지게 될 때는, 같이 실린 역자의 해설 '인간 본성의 이중성과 도덕적 니힐리즘'을 읽어보면 된다. 역자의 해설을 참조해서 정리하면, 소설속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 역사상 위대한 공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수한 인명을 살상해도 되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라스꼴리니코프) 및 개인적인 이익의 충족이 사회적인 이익의 충족이 극단적 이기주의를 보이는 사람(스비드리가일로프, 루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의 피해(생명까지)를 합리화시키며, 자신(혹은 사회)를 위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 사회의 불의와 폭력을 참고 지켜보며 거기에 복종하며 사는 혹은 죽는 사람들(마르멜라도프, 두냐, 소냐 등). 무능력하거나 헌신적이거나.

- 모든 범죄는 환경에서 기인하며, 만일 사회적인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인간의 범죄는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 계몽적 합리주의자(레베쟈뜨니코프)

- 수학적인 계산으로 사회와 전 인류를 조직할 수 없다고 믿으며, 인류 사회의 완성은 오래된 역사의 살아있는 과적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며, 인간은 생명이 없는, 개조의 대상으로서의 기계가 아닌 모순과 의심, 반항 등 예기치 못한 다채로운 삶을 지닌 존재라고 보는 사람(라주미힌)


- 생명 존중 사상과 고난을 통한 정화라는 도스또예프스키의 사상을 대변해주는 인물(뽀르피리). 구원으로 이끌기에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사람으로,  법률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으로만 라스꼴리니꼬프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 라스꼴리니코프를 갱생으로 인도하는 구원자(소냐)


내 이성으로는 '라주미힌'의 사상이 옳다고 느끼지만, 살다보면 어떤 경우는 이기주의에 따라 스비드리가일로프나 루쥔처럼 행동할때가 있을 것이고, 혹은 계몽적 합리주의에 따라 레베쟈뜨니코프처럼 말할 때도 있을 것이며, 그리고 어떤 시간동안은 마르멜라도프처럼 무기력하게 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느덧 라주미힌이 되어있기를 바라지만 스비드리가일로프나 루쥔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루쥔이 되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러고보니 루쥔의 세계관과 내 세계관이 닮은 부분이 많다!). 한때는 내가 소냐같이 누군가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건방진 생각도 했었고. 모르긴하지만 레베쟈뜨니코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4. 전국동시지방선거


마침 오늘이 제 6차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아침에 투표를 하고 하루 일과를 보냈는데,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각자 위의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 만일 어떤 위대한 인물 때문에 혹은 놀라운 시스템 덕분에 세상의 불의가 어느 순간 거의대부분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얼마의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면 또다시 불의가 생길 것 아닌가. 그래서 허무주의(니힐리즘)이겠지만. 그 허무주의를 극복할 방도는...


5. 에필로그: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p.809) 


이 한 문장을 쓰고 싶어서 작가는 긴 소설을 썼을 것이다. 변증법(이론과 논리)으로 현실을 바꾸려고 애를 썼지만, 삶에 녹여져있는 사랑을 발견할 때 비로소 제대로 살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최고가치의 탈가치'를 표방하는 허무주의에서는 이것도 무의미하다고 하겠지만.


6. 역자의 총평


이렇게 소설 '죄와 벌'은 한 가난한 대학생의 범죄를 통해 죄와 벌의 심리적인 과정을 밝혀줄 뿐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문제, 즉 죄와 인간 본성의 문제, 선과 악, 신과 인간, 사회적 환경과 인간 범죄의 상관성, 혁명적인 사상과 실제적인 측면의 문제 등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와 더불어 도덕과 윤리와 연관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룬 심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p.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