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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문학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줄거리: 주인공인 목사는 눈먼 소녀(제르뜨뤼드)에 대한 연민을 느껴 집으로 데려와 양육을 하지만 어느 틈에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목사는 자신의 아내, 자녀들보다도 소녀를 더 사랑하고 아껴준다. 목사의 아들(자끄) 역시 소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연적이기도 한 아버지 목사의 권유로 소녀에 대한 사랑을 접으려고 노력한다. 소녀 역시 목사를 사랑하지만 개안수술을 받아 앞을 보게 된 후에 자신이 상상했던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아들(자끄)였음을 알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십여년전에 읽은 '좁은 문'에 이어 '전원교향악'을 읽었다. 음악을 즐겨듣는 요즘의 나로서는 '지드'라는 작가보다는 소설의 제목이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동안 '기독교적인 문제성'에 대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상적인 종교를 따르지 못하는 인간의 문제성에 대해 지드와 같은 고민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가족을 사랑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을 때, 혹은 가족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며 그 상황을 지켜보는 가족은 어떤 기분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웃을 돕는 것과 가족을 돕는 것이 서로 상충될 때. 참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고등종교에서는 가족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 같으나, 같은 종교를 믿는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소홀히 하고 종교를 위해 헌신한다. 어떤 종교단체에서는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것을 대의를 위한 희생 쯤으로 생각해서, 숭고한 가치를 위해 오히려 가족에게 소홀하도록 권하는 곳도 있다. 같은 교인과는 그야말로 가족처럼 대하면서도, 실제 가족은 (교회를 안다닌다든가 하는 이유로) 소홀히 여기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지드는 그런 점을 짚은 것이다. 목사가 불쌍한 소녀를 돕는 것은 좋다. 그런데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지 않았던 사랑을 소녀에게 주며, 더 나아가 소녀를 이성으로 생각하고 사랑한다. 엄연히 아내가 있고 가정이 있음에도. 더 아이러니한 것은 소녀를 데리고 오면서 생기는 부차적인 집안일의 대부분은 아내에게 더해졌다는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행색은 목사가 내고, 실질적인 일은 아내가 한다. 게다가 소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낀다

 

사실 종교를 믿는 사람 중에 많은 경우가(나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뿐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열심히 했지만, 사실 하느님입장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인 경우도 많고 오히려 그 사람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취와 욕심을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한데,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천히 생각을 풀어나가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그나마 가족을 돕는 것은 전혀 모르는 타인을 돕는 것보다는 조금 수월하고. 그럼에도 진정한 종교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지만, 종교의 틀은 사람을 숭고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가끔 알게되는 위대한 성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위대해보이는 일을 했음에도, 지극히 겸손하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마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한 세례 요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