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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경제학 & 사회과학

불황 10년, 우석훈

 


불황 10년

저자
우석훈 지음
출판사
새로운현재 | 2014-08-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88만원 세대’ 우석훈이 쓴 불황 극복을 위한 생활경제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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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파와 좌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우파와 좌파,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수년전까지 나는 스스로 중도우파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보기에 스스로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은, 분배정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남의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다같이 잘 살아야 되니까 너가 갖고 있는 기득권 내놔, 같은 식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의 말 대로라면 자신들은 항상 피해자다. 다른말로 하면,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이 점을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게으름이 싫었다. 그들에 대해 가장 크게 실망스러웠던 것은 2008년이던가 광우병 사태때였는데, 약간의 위험성을 가지고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통해 전국민을 광우병 위험지대로 몰아넣었던 일이다. 많은 국민이 광화문에 모여서 대정부 규탄집회를 해야할 만큼 한국이 광우병 위험지대였는지, 혹은 악한 정부이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정권을 흔들어야 하는 도구로서 광우병을 이용했는지는 모르나, 전자라면 멍청하고 후자라면 방법이 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나는 얼마전부터 내 생각과 가치관을 바꿨다. 지금은 중도좌파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게 그런 생각을 불어넣어준 이는 이 책의 저자 우석훈 씨는 아니며, 나보다 100여년 전에 미국에서 살던 사상가 헨리 조지이다. 그의 책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으며, 돈의 흐름과 관련되어 어떤 이들은 손쉽게 너무도 큰 돈을 버는 반면 어떤 이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생계를 유지하기가 그렇게도 힘든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종교적 자비심'에 호소한 것처럼 나도 내 마음속에 작게 나마 남아있는 자비심에 기대어 사회를 다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칼 포퍼의 말,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도 바보며, 늙어서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도 바보다'라는 말에 공감하였으나 이제는, '늙어서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난하는 자는 자기의 욕심만 챙기는 이기적인 자가 아닌가 스스로 되돌아보라'라고 받아치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좌파들의 게으름은 싫어하며 그 점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만큼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서 돈있는 자를 더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모두가 좌초할 수 밖에 없음이 점점 더 분명해보여,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점에서 스스로를 극좌파라고 하는 우석훈씨로부터 배울것이 적지 않다.

 

2.  Your happiness is my happiness.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Your happiness is my happiness'라는 생각이 자리한다. 사람은 이기적 존재인가, 이타적 존재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내 자신에게 이로운가. 언뜻 보면 남을 위해 살면 내 것은 챙기지 못하므로 내게 큰 손해가 될 거라고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은 끝났다. 이 점을 근거로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향해 갈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고등종교가 추구하는 바도 같은 선상에 있다.

 

12년전 학생때 일이다. 얼마전 정년퇴임하신 소아과 교수님이 당시 실습도중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인가 이익인가'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전해주어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지만, 같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면서 내가 가진 개념이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라는 요점으로 대답을 했고, 교수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주셨던 생각이 난다. 사회는 그런 곳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는 그런 곳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본인에게도 행복할 것이다. 물론 언제 어디서나 사기꾼은 조심해야 하며,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듯이, 속이는 이들과 언변만 유창한 이들에 대한 긴장은 늦추지 않아야 세상이 믿을만한 곳이 된다. 

 

3.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내 생각의 변화에 대해 집중하다보니 정작 책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어졌다. 그의 책 역시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기에 완벽할 리 없으나, 그로부터 배울 점만 잘 배울 수 있다면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한 것 아닌가. 30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서 프리랜서가 되고, 아이 둘을 키우며 경제와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경제학자인 그의 고민 만으로도, 힘든 시대를 같이 살아내면서 이미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셈이다. 

 

몇 가지를 추스리자면, 많은 직장인들의 꿈인 연봉 1억원의 직장인들이 오히려 약간의 돈이 있기 때문에 무리하다가, 역설적으로 하우스푸어가 되었다는 지적이 매우 인상깊었다. 30대를 보내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조직을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라는 점도 내게 힘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학부모도 학생도 아닌 학원관계자만을 위한 구조가 된 지 오래되었으므로 굳이 학원을 위해 우리 가족의 에너지와 아이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나와 생각을 같이 했다. 한국에서 초중고 및 대학 6년을 다녀본 내 경험으로도, 공부는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살면서 공부 이외에서 풀어야할 문제가 엄청 많기 때문이다. 결국은 문제를 부딪히고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누가 나대신 가르쳐주거나 문제를 풀어주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부의 시간동안만 필요하다. 그에 비해 삶은 생각보다 길며, 풀어야할 문제도 생각보다 많다. 언어교육에 대해서는 내 생각과 좀 다르긴 하나(나는 12세 이전에 외국어 학습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모국어를 통해 지적 성숙이 완전히 일어난 후에 외국어를 배워도 늦지 않다)도 합리적인 생각으로 보인다.

 

불황의 시대...어쩌겠는가. 역사상 어떤 이들은 전쟁의 시대를 살았고, 어떤 이들은 호황의 시대를 살았다.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은 불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대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현실에서 어떻게 생존할지 고민하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고민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련다. 이 시대의 경제와 30대 가장들의 고민, 그리고 교육문제에 대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솔한 글을 읽은 것 같아, 책을 읽고 나서도 매우 즐거웠다. 많은 경우에 옳은 내용보다는 진솔한 내용이 잔잔한 감동을 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