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라는 영화제목에서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떠올렸던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크게 웃는 장면 없이, 크게 슬퍼 우는 장면 없이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윤동주의 짧은 생애를 담아낸다.
세상에 시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은 공명심도, 풋풋한 첫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스무살의 순수함도, 이미 정해진 세상의 틀에 맞추어야 하는 젊은 날의 나약함도, 탄압하는 일제로부터 저항하고 싶은 용기와 그와 동시에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도, 거대한 세상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과 무기력함까지. 그 모든 것을 백여분 남짓한 필름에 모두 다 담아냈다.
아마도 스무살의 내가 이 영화를 봤다면, 내가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애국심에 피가 끓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동주처럼 나라의 괴로움에 같이 괴로워하지 못하는가 하고 자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마흔을 바라보는 나는, 스무살의 윤동주가 마주쳤을 세상이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진국에 이름을 올렸다고 자랑스러워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현대의 젊은이들도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모두 힘들겠지만,
사람의 인생을 칠팔십이라고 할때 인생의 정점을 막 지난 내 눈에는, 이십대 윤동주가 접했던 현실과 그의 무기력함이 마음으로 전해져와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담담하면서도 슬펐다.
누가 와도 쉽지 않았을 그 현실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나이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어린날의 꿈과 이상에 사로잡혔던 젊은 날을 지나보내고, 마음이 나이들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가 더 슬프게 느껴질수 있다는 역설을 이 영화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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