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Always with me. 유튜브에서 우연히 들은 멜로디가 이 영화를 보게끔 이끌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직업을 위해, 생계를 위해, 그럴 듯한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느라 감정이 모두 소진되어버린 오늘, 이 영화는 다시 내게 감정을 채워주었다.
치히로는 이사가는 길에 어느 숲속에서 우연히 터널을 접하며 낯선 환상의 세계에 빠져 버린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어느덧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모두 변해버렸을 때, 그제서야 자신이 낯선 세계에 빠져버렸음을 알게 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하나 되돌아갈 수도 없다. 아마도 낯선 세계는 사람의 인생에서 만나는, 환상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일 것이다. 무언가에 홀려서 한참의 고생을 하고난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 후에야, 내가 빠져있던 곳이 환상의 세계였음을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세계 말이다. 그곳에는 세상의 온갖 신이 와서 쉬어가는 온천장이 있다. 온천장에서 치히로는 일해야만 사람으로서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동물들도 있지만, 아마도 그들은 사람으로서 원래 있던 세계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기약도 없이 동물로서 일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쉬려면, 그를 접대하느라 수고하는 많은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치히로가 빠진 세계는, 그렇게 세상의 신을 접대하는 세계이다. 유일신을 믿는 문화에서는 신이라면 인간위에서 군림하는 존재로 먼저 인식하겠지만, 범신론적인 문화에서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강력히 움직이는 어떤 존재를 가리킬 수도, 혹은 자연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인간이 버린 온갖 쓰레기를 인해 '오물 신'으로 오해받은 '강의 신'도 그 곳에 와서 자신의 상처를 씻고, 자신이 감당했던 온갖 쓰레기를 내려놓고 회복되어 돌아간다.
그곳에 얼굴없는 유령(가오나시)도 잠입한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자신만의 모습이 없다는 의미일텐데, 그래서인지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내세우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온천장으로 몰래 들어온다. 가오나시는, 얼굴이 없기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자신감 없는 모습이나, 낯선 온천장에서는 세상에서와 달리 원하는 만큼 금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 아니 동물들(혹은 동물같은 사람들)을 매혹하기도 하며, 그들을 잡아먹기도 하는 포악한 모습을 보인다.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아마도,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모습을 갖지 못하고 사회적 가면(페르조나)만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외로움에 시달린다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오나시처럼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남들이 만들어준 가면만 쓰고 다니면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에게는 자신의 돈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관심을 끌고, 타인을 잡아먹기도 하는 포악함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가오나시의 유혹에도,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존재는 '사람'인 센이다. 아마도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은 가면의 위협과 유혹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온천장의 주인할머니 유바바는, 돈을 위해 모든 손님을 받는 사람이다. 직원들과는 노동계약을 맺으며 개인의 이름을 빼앗아 버린다.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며 그곳 직원이 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온천장 주인만을 위해 일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일만 하면서, 먹을 것과 돈만 주면 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치히로도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그 대신 '센'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며 그 세계에 적응해버린 '센'은 자신의 이름을 잊을 뻔 하지만, '하쿠'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 '치히로'를 잊지 않게 된다.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낯선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센'은 환상의 세계에서의 이름이고, '치히로'는 현실의 세계에서의 이름이다. 같은 존재이면서 서로 다른 존재인 둘은, 환상의 세계에서는 서로를 모른다. 분리되어있으며 '행방불명'상태이다.
현실로 돌아오는 마지막 관문은, 돼지로 변해버린 아빠 엄마를 찾는 숙제이다. 아이가 자라다보면 어느 순간 부모는 돼지같은 탐욕의 존재로 비쳐질 수도 있다. 부모가 돼지가 되었다는 환상으로 힘들었던 '치히로'에게 현실로 돌아오는 마지막 관문은 부모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다시 인식하는 단계로 그려진다. 환상은 '센'을 속이려 하지만, 현실의 '치히로'는 지혜롭게 부모를 다시 인식한다. 그러면 부모는 돼지에서 다시 사람으로 변하며, 처음부터 사람이었던 엄마 아빠가 있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분리되었던 '센'과 '치히로'는 과거의 '치히로'를 떠나보내며 새로운 '치히로'가 되어 간다. 환상의 세계를 벗어나시 그사이에 현실은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주차한 차에 먼지가 수북이 쌓였고, 숲속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있다는 이야기 '립 반 윙클'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인생에서 환상의 세계에 빠지면,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을 때까지 현실의 기준으로는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된다. 환상속에서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고, 나를 위협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버리면, 그 사이에 세상은 변해있고 자신도 변해있다. 괴롭지만 의미있는, '밤바다 여행'이라고도 하는 기간을 무사히 겪어내면 현실은 새로운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그리고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있다.
이 영화에도 오랜 인류 역사에 녹아있는 영웅신화가 담겨있다. 아마도 과거의 사람들은 꿈을 통해 혹은 환상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하였을텐데, 의식이 빈곤한 현대인들은 이런 영화를 통해 신화의 이미지를 경험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힘든 일상에서 신화의 이미지를 통해 사람은 에너지를 얻게 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영화속 상징에 대해 잘 정리된 블로그
http://aciiacpark.blog.me/10017320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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