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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내 생각

짧은 여행의 기록4 (04/2/14)

짧은 여행의 기록4 (04/2/14)

작성일 2004.06.22 15:34

점심때 숙부님을 뵙기로 해서, 오늘 주어진 시간이 정말 빠듯하다. 어제 인근 식당에서 먹은 저녁도 그리 맛이 없었던 터라, 아침을 거르고 여관을 나섰다.

참 볼게 많다는 경주. 그런 경주에 할당된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 고민 끝에 시작을 일단 경주 박물관으로 잡았다. 박물관 입구에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있다. 종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직접 쳐볼 수는 없고 매 정시때마다 종소리가 방송된다고 쓰여있길래 그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렸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그 방송이 울려퍼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비록 종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에밀레종의 장엄함을 상상하며 박물관을 들어갔다.

말탄기사모양토기가 인상적이었다. 신기하게 생겨서 가까이 보니 국보270호라고 적혀있다. 신비로웠다. 13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마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이.

박물관 길건너편에 안압지로 갔다. 910원짜리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주차요금을 받는 사람이 나타나 요금을 받아간다.
안압지 내부는 휑하니 비어있었다. 안압지(池)가 아니라 안압지(址)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연못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일구어낸 국력을 보여주듯 상당히 웅장했을 것 같다.

조금 걸어서 반월성과 석빙고에 갔다. 그래도 경주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한번 더 보고 싶어서 가긴 하였는데,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 중학교 때 와본 기억 그대로이며, 다만 여기가 신라시대의 '강남'이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숙부님과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한 곳을 보기로 하였고, 진평왕릉을 보기로 하였다. 진평왕릉 입구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정표를 따라 온 길은 작은 시골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진평왕릉은 보이지 않았다.

언뜻 왕릉 같은 것이 보여 가까이 가봤는데, 유홍준씨가 입이 닳도록 '좋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식견이 짧아서 그러한가 여기고 능 앞에 가니 어이없게도 '설총묘'라고 쓰여있었다. 다시 진평왕릉을 찾아 마을을 두어바퀴 돌고 나서, 아무래도 길을 잘못들은 것 같아 처음 들어온 갈림길까지 되돌아갔다. 갈림길에 있는 '진평왕릉'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다시 보니,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어이없었다. 삼거리였는데 나머지 두 길이 하나는 보문단지, 또 하나는 경주시내로 가는 길인지라, 그 흔들리는 이정표를 다시 믿기로 하고 한참 헤메던 그 마을로 다시 들어갔다. 또 한참을 헤메다 거의 포기할 지경이 되어서, 마을 입구에서 천천히 흝어 보였다. 언뜻 능이 하나 눈에 띄어 가까이가니 진평왕릉이었다. 마을에서 약간 동떨어진, 논밭에 둘러싸인 한적한 곳이 있었다. 족히 1시간은 헤멘 것을.

좋다. 그 분위기가 좋다. 그런데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의 나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유산에 비해서, 또 그 시대의 다른 왕릉에 비해서 어떤 점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educational guess가 아닐까 싶다. 유홍준선생도 열번이나 와 보고도 잘 몰랐다는데, 하물며 나 같이 의학외에 일자무식인 사람에게랴. 아무튼 분위기가 좋았다. 그 흔한 철제 담장도 없었고.

서둘러 보문단지의 Hilton호텔로 갔는데,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 절대 보면 안된다고 하던, 쓰레기라고 하던 보문단지 속에 들어와있었다. 숙부님 덕택에 호텔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숙부님 친구분들과 환담을 나누다가, 저녁때 포항에서 다시 뵙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 3시간이다. 처음 계획한 경주에서의 2박3일짜리 메이저 여행에서 6시간짜리 마이너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디를 볼까 고민을 하다가 불국사와 석굴암을 다시 한번 보기로 하였다. 불국사에 잠시 들른 후, 감포가도를 달려볼 요량으로 7번국도를 타고 동해바다로 갔다. 과연 길이 아름다웠다. 댐을 짓고 생긴 인공호수를 끼고 가는 7번 국도. 과연 아름다웠다.

동해바다가 저멀리 보일만한 곳에서, 이쯤 어디에 감은사지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주위를 보니, 마침 뚝 하니 서있는 두개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감은사탑 두개. 한참 멀리 서있는 저 두개의 감은사탑이 내게 무얼 말하는 것 같았다. 감은사탑보다는, 감은사가 위치한 지리적 위치가 내게 무얼말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문무대왕릉이 어렴풋이 보이는, 그보다 명확하게 장엄하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동해안을 따라 포항의 호미곶을 들렀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었다.
호미곶에서 포항에 이르는 길이 험하다. 가까스로 약속한 시간인 7시를 조금 넘겨 포항에 도착했다. 저녁 또한 숙부님 친구분들과 함께 미송일식이라는 일식집에서 미식을 즐겼다. 정신없이 세시간을 배꼽잡고 웃었다.

영화를 보자는 찬기의 제안에 따라, 포항시내의 영화관에서 말죽거리잔혹사를 봤다. 요 근래 몇개월동안 영화를 못봤다는 얘기에, 조금 피곤하긴 하였으나, 작년 여름 비슷한 처지였던 내 생각도 나고, 찬기의 필요를 채워줄 생각에 극장에 갔다.

영화를 보고, 새벽2시쯤 되어 찬기의 기숙사로 왔다. 시설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으나, 학위를 위해 혹은 학문을 위해 마치 고시생이라도 되는 듯한 생활이 많이 답답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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