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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종교 & 철학

[책] 아직도 가야할 길, M. Scott Peck


아직도 가야 할 길

저자
M. 스캇 펙 지음
출판사
열음사 | 2006-07-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심리상담자인 저자가 사람, 전통적 가치, 그리고 영적 성장에 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매년 한 번씩 읽기로


20대에 한 번 읽었던 책인데, 작년 1월에 다시 한 번 읽었고, 올해 2월에 세 번째 읽었다. 같은 책을 3번씩 읽은 것은 성경책과 삼국지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올해로 세 번째 읽었다. 그리고 앞으로 새해가 될 때마다 연초에 1번씩 읽으려고 다짐을 했다. 이 책을 광고하는 어떤 문구에, '성경과 나란히 두고 싶어하는 책'이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세 번 읽고난 나의 느낌도 그와 비슷하다. 신성에 도전한다는 우려만 없다면 나도 같은 표현으로 이 책을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의 화두는 크게 두가지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부분들, 그곳에 신의 은총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주제에 대해 450여페이지에 걸쳐 이야기하는데 깊이 생각하며 음미하며 읽어야 할 부분이 많다.


2.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낭만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노력이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많은 부부들은 낭만에다 기대고 낭만만 바랄 뿐 진정으로 사랑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힘든 일을 감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노력하기만 한다면 그결과 막대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일상으로 녹아들게 되면 한 배우자는 상대방의 말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때 흔히 다음과 같이 외친다. "스물아홉해나 함께 살았지만, 당신에게 그런 면이 있다니, 아마도 당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군요." 비로소 그들의 결혼 생활에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p.184)'


내가 사랑한다고 느껴서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상대방에게 대해주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연애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어 감정대로 행동하게 되면 상대방이 금방 부담을 느끼고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그러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기술하며, 저자는 사랑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p.113)'라고. 이 무슨 뜬구름잡는 표현인가 싶기도 하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곧 동의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불같은' 사랑을 해서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만 가득 안기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TV에서, 그리고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스캇 펙이 내린 사랑의 정의가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한다. 보통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의도와 달리 자식이 느끼기에는 부모의 본심이 왜곡되어 전달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이를 사랑할 것인가. 아이가 어떻게 바르게 자라도록, 사랑스럽게 자라도록 양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중요한 양육 원칙에 대해서도 설명하기에, 이 책은 좋은 육아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좋은 의지를 가지고 양육한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항상 바르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말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고 해서 아이가 항상 비뚤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신비로운 영역, '은총'으로 설명한다.


3.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부분들, 그곳에 신의 은총이 있다


'과학 자체가 하나의 종교이다. 최근에 과학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거나 또 그것으로 개종한지 얼마 안 되는 과학자는 기독교의 십자군이나 알라의 군대와 조금도 다를바 없이 광신적이다... 과학자들에게서 그들의 성숙도를 재는 지표는, 과학도 어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독단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p.328)'


'인간이 과학적 연구방법에 의거하여 전염병 항체라든가 꿈의 상태, 무의식 같은 것을 개념화하기 훨씬 전부터 수백 수천년동안 이 힘은 종교에 의해서 인지되어 왔다. 그들은 그것을 '은총'이라 불렀다. (p.381)'


과학과 종교.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 과학은 수많은 연구결과를 내보이며 자신감 있게 현상을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의학도 그러한데, 의학논문을 보면 어떤 병이든 연구하고 분석해서 치료할 수 있을 것처럼 접근하지만 대부분은 'A약으로 치료하면 치료효과가 70%이고, B약으로 치료하면 치료효과가 50%이다' 내지는 '푹 쉬도록 도와주면 대부분 저절로 회복하지만, 1%에서는 사망한다'는 식이다. 최선의 결과를 얻는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큰 의미를 두어야 하지만 이런 표현자체가 의학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현대의학의 권고를 벗어나면 절대 안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도 그러했다. 학생시절 그리고 전공의 시절에는 교과서라 불리는 것에서 절대로 벗어나면 안되는 줄 알고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의학 자체가 불완전한 부분이 있음에도 의학을 맹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면 그때의 의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종교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물론 현대의학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좋다. 나는 여전히 최선의 진료를 위해 교과서를 따르기 위해 노력하고, 권위있는 학술지에 나온 논문을 읽고 숙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의학 또한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지 않는가. 다만 현대의학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과, 현대의학을 무시하는 것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데도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경우. 틀림없이 존재하는데, 그런 경우를 저자는 '은총'이라는 다소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용어로 설명한다. 사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만, 과학으로 설명 못하는 것 또한 매우 많다. 그부분에 '은총'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조금 더 나아가 이런 노력을 한 대표적인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을 소개하며, 종교에 대해 소개한다.


한 가지 더, 진화에 대한 언급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생물학적 진화 과정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것이 일종의 기적이라는 점이다. 우주에 관해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진화는 일어날 수 없다. 자연 법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에 열역학 제2법칙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에너지는 언제나 보다 정돈된 상태로부터 덜 정돈된 상태로, 보다 복잡한 분화 상태로부터 보다 단순한 분화 상태로 흘러간다...... 진화의 흐름은 바로 이 엔트로피의 힘과는 정반대이다(p.386)'


코페르니쿠스는 당시의 성경적 세계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동설을 주장해서 과학사를 바꿨다. 그 당시를 사는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뿐더러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 때 이후로 이제는 지동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조금 여유있게 생각하면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성경의 세계와 크게 위배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진화와 창조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아닐까. 지금의 교육은 '창조vs진화'로, 서로를 같이 갈 수 없는 적대적인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지만, 스캇 펙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어떤 의미로 진화는 창조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관련된 분야의 학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먼훗날 더 많은 사실이 알려지면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