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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문학

[책] 간디 자서전, 함석헌

위인으로 칭송받는 간디. 그의 인생에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한결같이 그를 칭송하는 지 궁금해서 그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다. 조금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었는데, 몇 가지 단어로 특정인을 규정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평가하고자 한 관점은 지도자로서, 종교인으로서, 변호사로서의 간디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로서의 간디에 대해서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에, 나는 지도자보다는 한 인간, 즉 종교인과 변호사로서의 간디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1. 지도자 간디

 

  민족주의라는 표현이 간디에게 적합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간디의 가치관과 사상, 능력이 시대적으로 인도라는 국가의 필요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분명해보인다. 아마도 간디보고 민족주의자라고 하면 그는 이런 칭호를 싫어할 것이다. 간디는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우연히 같은 동포인 인도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당하게 대우받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그것이 결국 인도의 독립운동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뿐. 어쨌든, 작게는 인도인의 처우개선에서 시작해 나라의 독립의 밑바탕까지 일구게 된 지도자로서 그의 위대함은 새삼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이런데 인도 자국민들은 어떠할까.

 

2. 종교인 간디

 

  간디가 믿은 종교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인도의 토속종교였던 것으로 보인다(아마 자신의 종교에 대해 소개했을텐데 내가 모르고 넘어갔을 공산이 크다). 그가 믿은 종교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힌두교, 불교와 같은 인도의 종교와 무척 비슷한 하나의 종교였던 것 같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종교적 신념에 대해 여러번 소개하였고, 자신의 삶이 종교적 신념과 일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삶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런데 그가 믿는 종교,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그가 '하느님'이라고 불렀던 절대자는 특정 존재가 아니라 '숭고한 도덕적 가치', 그리고 거기에 인도의 특정 토속종교가 결합된 형태인 것 같다. 그는 진리의 여러가지 특성을 발견하고 믿고 노력하였으나, 창조자의 이름을 아는 데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엄밀히 말해 -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종교의 흉내를 낸 범신론을 믿은 것 같다. 거기에 토속적 종교가 결합된 형태로. 그러다보니 인간으로서 간디는 도덕적 가치를 숭상하며 그 자신의 도덕 또한 높은 수준에 이르긴 했겠지만, 그의 생각을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엉뚱한 부분도 적지 않다. 조금 비하시켜서 말하면, 이상한 것에 '집착'한 것 같다. 개개인의 종교적인 특징, 신념 자체를 비하시키려는 뜻은 아닌데, 일반적인 -타종교를 믿는-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이를테면 채식주의, 동정주의같은 것이다.

 

  채식주의는 자신의 건강을 위한 하나의 생활방식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한발짝 물러서 생각해서 특정종교에서는 교리에 따라 권장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같은 종교라면). 그런데 간디의 경우는(원래 인도의 종교, 혹은 불교 힌두교가 원래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관점으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10살난 아들이 장질부사(Typhoid fever)에 걸렸다. 장질부사, 즉 장티푸스는 지금에야 좋은 약이 많이 나와있지만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 당시의 의술이 보잘 것 없었겠지만, 아무튼 당시의 의사는 장티푸스 걸린 간디의 아들에게, 계란과 닭국을 먹이도록 처방을 내렸는데, 간디는 그것을 거부했다. 채식을 어기면서까지 아들의 생명을 살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들은 40여일간 발열이 지속되어 고생하다가 다행히 결국 회복되었고, 간디는 이것을 '하느님의 인도하심, 보호'라고 고백한다. 채식을 지킨 결과 아들의 생명을 건졌다...는 해석이다. 마치 요즘 관점으로 보면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는 데 수혈을 거부하고 죽어가게 놔두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믿는 일부 기독교인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기독교인 중에도 '기도하면 나을 수 있으니 병원치료는 안 받겠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선택한 치료방법 중 하나가 현대의학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궁금하다. 물론 종교적 신념에 깊이 심취하면 가족의 생명보다도 종교적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안다. 다만 그것이 일상생활, 즉 희노애락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일상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종교적 신념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아들의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순교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순교를 택했다면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순교의 목적이 '채식'을 깨지 않기 위해서...라면,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채식을 위해, 즉 동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내 아들의 죽음은 각오한다...는 생각은, 좀 무섭다(넓게 생각하면 내 아들은 동물의 하나 아닌가?). 채식을 위해 거의 순교에 가까운 정신을 발휘하였기에, 한 민족을 이끈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니다.

  질병과 관련되었기에 내가 더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무리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당대의 의사의 처방을 인정하지 않고 '상처에 흙을 바르면 낫는다'고 주장하는 등의 기행(奇行)은, 읽는 내 마음을 지치게 한다. 역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민족을 이끌 지도자의 위치까지 오른 사람이, 더군다나 나름대로 논리적인 사고를 가졌을 변호사이며, 당시 선진국인 영국유학까지 마친 사람이었는데... 그를 이해못하는 내가 지나친 걸까... 

  채식과 더불어 간디가 스스로에게 요구한 것은 금욕, 특히 동정(童貞)이었다. 뭐... 생각하기에 따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정을 강조한 것이 간디가 결혼한 이후다. 그러면 문제가 달라진다. 물론 당시 인도의 문화가 조혼(早婚)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결혼해서 아내가 있는 사람이 동정을 강조해서 부부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부부관계를 할 때마다 자신의 '더러운 욕정'에 이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특정 시기에 특정목적을 위해 부부관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부관계 그 자체를 불결한 것으로 본다. 마치 '불이 뜨거워서 손 델 수 있으니 불을 사용하지 말자, 밥을 먹지 말고 쌀 자체를 먹자'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결혼 전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 후에 이런 생각은 심히 가정파괴적이다. 주위에서는 간디를 칭송했는지 모르지만, 간디의 아내는 평생 자신을 무시하고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인류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가정이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까운 단위가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책을 읽으면서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실험이야기'라고 한 것의 실상이 이렇다는 것은 참 실망스러웠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지도자로서의 간디, 특히 인도국민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아야 되겠지만, 종교적 및 세계관적 관점에서의 간디는, 내 생각에, 기이한 종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간디는 아힘사(Ahimsa: 사랑, 비폭력)를 주창하며 인도의 독립을 이끌지만, 인도가 독립하자마자 그가 주창했던 가치는 잊혀지고 만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인도국민들이 간디의 정치력과 신념을 이용했고, 독립을 이루자마자 그것을 버렸다...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간디의 비폭력운동은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운동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믿고, 간디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한 탓일까. 물론 지도자로서의 간디는 영웅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간디가 영웅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달리 표현하자면, 진리를 향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 방향 자체가 살짝 어긋났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짝'이면 큰 차이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진리'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가 살짝 어긋나면 결국 목적지가 달라지며, 극단적으로는 기차가 탈선할 위험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3. 변호사 간디

  간디는 아버지가 수상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영국유학을 다녀온다. 귀국후 변호사로 인도에서 개업하지만 실패하고, 주위의 소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게 된다. 거기에서는 그가 변호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인생에는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다'고 말한,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간디는 남아공에 가기전까지는,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본인은 변변치 못했던, 그래서 스펙을 쌓기 위해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온 그저그런 변호사였으나, 남아공에서의 그는 - 겉으로보기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의 흔들림없는 심성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남달라보이기는 했지만.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변호사로서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간디의 자세이다. "나는 법률인의 진정한 역할은 서로 갈라진 양쪽을 화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한 그의 말은, 매우 높이 사고 싶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한데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현대의 사회에서 직업에 이런 태도를 가지려면 정말 쉽지 않다. 교사는 '아이들은 세상의 미래'라고 생각을 하고 가르쳐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으며, 의사는 '환자의 육체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비단 교사, 의사 뿐 아니다. 식당주인은 '내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힘을 얻고 건강해지기'를 바래야 하겠지만 자신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정비사는 '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며 일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그러지는 못하면서 남에게는 높은 직업의식을 요구한다. '내가 돈을 벌기위해 회사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교사가 돈벌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면 나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간혹 있지만, 대부분 이런 생각을 남에게 요구하기 쉽다. 그런데 간디는 변호사일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의 목표가 '갈라진 사람들을 화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진정 간디의 위대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로서의 간디는 내게 훌륭한 사람이고, 종교인으로서의 간디는 내게 기이(奇異)한 사람이지만, 변호사로서 혹은 직업인으로서 간디는 내가 존경하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