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영화

[영화] 세 얼간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그러하듯이,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영화에 대한 느낌은 남지만 내용 자체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때면 사진 한 장이 아쉬운 것처럼, 오늘 본 영화에 대한 훗날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소감을 글로 남겨본다. 오늘 본 영화는 ‘세 얼간이(3 idiots)’이다. 화려한 파티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인도 발리우드(Bollywood)영화라는데, 말 그대로 “화려하고 유쾌한 파티”를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1.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네 인생을 살아라.

 

사진을 좋아하지만, 아버지가 정해진 꿈 ‘공학자’가 되기 위해 명문 공과대에 들어간 ‘파르한’은 끝내 사진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진을 배우기로 결정한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파르한의 아버지 또한 뜻을 굽히며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네 인생을 살아라’며, 아들이  사진의 길을 걷도록 허락함과 동시에 지원을 약속한다.

 

대학 3학년이던 2002년, 병원에서 실습할 때의 일이다. 병리과실습 때였는데 당시 병리과 주임교수님이 학생은 어느 과를 전공할 계획인지 물어보셨고 나는 그 당시 생각대로 소아과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다. 그 때 해주신 병리과 교수님의 말을 평생 잊지 못한다.

“맞아.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 어느 과를 전공하든 인기있는 과는 시간이 지나면 인기가 떨어지고, 인기없는 과는 인기가 높아지고, 돌고 돌게 되있어. 그러니까 가장 하고 싶은 과를 선택하는 게 잘 선택한 거야”짦은 몇 마디 말이, 당시 비인기과였던(지금도 비인기과ㅠㅠ) 소아과를 지망하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쁘고 착한 아이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싶어 소아과의사가 되었지만, 내 자신의 내적인 요인(의사로서의 소질 및 능력부족)과 외적인 요인(개원이든 봉직이든 매일 100명 가까운 환자를 봐야 병원이 운영되는, 왜곡된 의료제도)때문에, 학생시절 생각했던 의사의 삶과는 동떨어진, 상당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과의 괴리감은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영화는 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그래도 이 영화에서처럼, 진정한 재능을 따라가며 노력하면 성공이 뒤따라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위안을 가져본다.

 

 

2.    무한 경쟁의 시대 그리고 메기론.

 

공학을 좋아하고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에 온 똑똑한 학생 란초는, 공부의 재미 대신에 경쟁만을 강요하는 교육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에, 기회가 되어 동료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호소한다.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 설렜나요?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걸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됐나요?

아니죠. 모두들 미친듯이 레이스만 펼쳤죠. 이런방식이 무슨 소용있나요? 만약 제일먼저 풀었다고 해도 그게 지식을 늘게 해주나요? 아니요. 스트레스만 주죠. 여기는 대학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죠."

 

왜 성적순으로 자리배치를 하죠? 이건 마치 카스트제도 같아요. A등급은 지배자, C등급은 노예들…”

더 좋은 생각있나?, 네. 결과를 공개안하는 거에요.

 

란초의 탄식에 나도 깊이 공감한다. 아마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이런 탄식과 괴로움이 쌓이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긴 한데 경쟁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은 사람에겐 욕심이 없다는 주장만큼이나 허구적이다. 미꾸라지를 잘 키우기 위해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한 마리 같이 넣어서 키운다는 이른바 메기론. 경쟁력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메기론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람의 본성과도 직결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경쟁이 전혀 없는, 긴장이 전혀 없는 세상은 건강하지 못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 즉 욕심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경쟁없이 욕심없이 잘 사는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태어난 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믿는다.

 

물론 지나친 경쟁에 대해서까지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미꾸라지를 키우는 사람은 양식장에 메기를 기껏해야 한 두 마리 넣어두지, 메기를 수십마리 풀어놔서 미꾸라지를 다 잡아먹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공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란초는 그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는 것-마치 한국으로 치면 80년대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처럼-은 메기가 너무 많다는 탄식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탄식이 많이 들려올수록 사회는 메기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메기도 생명체이므로 자신의 번식을 위해 열심히 미꾸라지를 잡아먹으려고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힘이 있으니 이전의 왕정시대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것 아닐까

 

 

3.  절대 환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제발 같이 가줘요. 의사들은 선서도 하잖아요. 절대 환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영화의 큰 흐름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라주의 아버지가 위독해져서 구급차를 부르는데 오지않자, 의사인 친구의 스쿠터를 빌려서 아버지를 뒤에 태우고 간다. 물론 코메디 영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지만, 이런 장면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내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4.     마치며

 

나 같은 사람이 행여라도 글을 쓴다면 매우 무겁고 심각하게 밖에 쓰여질 수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화려하고 유쾌한 파티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닌가 한다. 

'독후감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A late quartet  (0) 2013.10.09
[영화] 샤인-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야 해  (0) 2013.10.01
[영화] 가위손, 팀 버튼 감독  (0) 2013.02.13
[영화] 초속 5센티미터  (0) 2013.02.13
[영화] 내 이름은 칸  (0) 201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