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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엔도 슈사쿠, 인생에 화를 내봤자

때가 되면 눈앞에 스승이 나타난다고 했나. 내게 '엔도 슈사쿠(1923-1996)'라는 일본 소설가는, 때가 되어 나타난 스승인 동시에 친구가 되어주었다.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기독교교리에 대해 괴로웠을 때, 서른 살에 읽고 서를 여덟살에 다시 읽은 소설 <침묵> 그리고 <깊은 강> 두 권의 소설을 통해, 내가 마음속에서 겪던 고통을 그와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인중에는 내 마음속 혼란을 공감해주는 이가 극히 드물었는데, 엔도 슈사쿠는 내가 겪었던 혼란을 이미 반세기전에 고뇌하여 자신만의 대답을 완성해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엔도슈사쿠의 단편소설집과 수필집 <인생에 화를 내봤자>를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을 읽을수록, 오래만난 스승이자 친구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와 비슷할까. 내가 고민했던 삶과 종교에 대한 어려움을, 나보다 앞서 고뇌한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나는 깊은 공감과 고마움을 느끼며 엔도 슈사쿠를 읽곤 한다. 엔도 슈사쿠의 생전의 뜻에 따라 <침묵>과 <깊은 강>을 그의 관속에 같이 넣었다고 하는데, 죽음을 앞두고 그런 선택을 했던 그의 마음을 아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70여년의 삶을 살면서,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삶의 과업을 완수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나처럼 반세기 후에 한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까지도 큰 영향을 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인생에 화를 내봤자>는 <침묵>, <깊은 강>에 비하자면 한결 가볍고 신변잡기적인 글모음이다. 하지만 짧은 글을 통해서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 뿐 아니라, 고통을 감내한 후 찾아온 마음의 평안을 읽을 수 있다. 그의 글 속에는 남의 삶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 대신에, 자신에게 주어졌던 힘든 괴로움을 묵묵히 자신의 삶으로 소화해낸, 작은 거인의 삶의 태도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어린 세대를 위해 쓴 글 속에는, 자신만의 경험이 완벽하다고 믿는 기성세대의 관점 대신에, 약한 생명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강해진 개인의 모습이 들어있다.


오래전 졸업한 모교를 찾아가 예전부터 있던 소나무를 보고 "너도 오래 살고 있구나"라고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는 에피소드(p.130)나, 그 어떤 인간도 자기 혼자서는 고민을 견뎌낼 수가 없다(p.160)와 같은 이야기에서 나는 큰 공감을 느낀다. 사회적 성공과 성취를 중시해서 남들이 바라는 목표가 자신의 목표인 줄 알고 살게 만드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여러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성취하기 위해 몸이 여러개라도 된다는 듯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신처럼 완벽한 성취를 할 수 있겠는가. 성취를 향한 일방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연 속 많은 생명처럼 역사속 많은 공동체처럼, 혹은 때가 되면 차고 때가 되면 기우는 달처럼, 자연의 흐름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살게 되면 좋겠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가오는 내 몸과 마음의 쇠퇴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좋겠다. 물론 그 과정이 매우 힘들겠지만 말이다. 왜 바쁘게 살아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 정신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담담한 문체로 쓴 엔도 슈사쿠의 <인생에 화를 내봤자>는 마치 오래된 미래에서 온 것 같은 스승이자 친구의 글처럼 느껴진다.


엔도 슈사쿠는 내가 겪은 삶의 고뇌를 미리 겪어본 선생(선생)으로서 살아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참 편안하다. 이런 작품들을 남겨주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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