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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영화

A Beautiful Mind, 2001

2001년, 스물 세살의 의학도였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정신분열병 schizophrenia는 이런 병이구나'라며 순전히 교과서적인 면에서만 바라 본 것 같다. 그 당시 인상적인 장면이라고는 환상을 현실로 여긴다는 것과, 신문기사를 통해서 특이한 패턴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것 정도였던 것 같다. 2017년 오늘, 16년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온 서른 아홉살의 나는 '뷰티플 마인드'를 다시 보았다. 


20대는 그러한 나이인 것 같다. 어떤 사물에 대해 어떤 현상에 대해 한 가지 관점으로만 보기에도 벅찬 시절말이다. 20대에는 대학교수들이 위대해 보였고, 사회적으로 많은 성취를 한 사람이 위대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고, 40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그들의 위대한 성취 이면에 겪는 다양한 괴로움이 있을수밖에 없다는 것을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20대에 위대해 보였던 일들도 지금 다시 보면 비교적 평범한 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젊을 때 보기에 학문적 성취가 대단해보였던 학자는, 사실 현실에서는 외로움으로, 병으로, 무기력함으로, 혹은 가족간의 갈등이나 불화로 괴로울수도 있다는 것을, 젊을때는 보기 어렵다. 영적인 거장으로 느껴지는 성직자중에는 젊고 의식이 약한 사람들을 자신의 신념체계에 가두어 놓으려는 이도 있다는 것을 알려면, 젊은이는 세상을 살아보고 나이가 들어가며 의식이 넓어져야 한다. 어릴수록 좋은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가지 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이나 성취를 남긴 사람들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괴로움을 본인이 겪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은 그렇게 균형을 맟추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인공 존 내쉬 John Nash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대단히 논리적인 사람은 대체로, 생각하는 능력을 얻는 대신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능력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는 어려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따지는 것은 그래도 비교적 수월한 일인 것에 비해, 주변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웃고 즐기는 일, 특히 낯선 사람하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러셀 크로우가 영화속에서 보여준 표정, 사람과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어딘가 부끄러운 듯 수줍어하는 그 표정을 짓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여전히 제일 어려운 나로서는, 존 내쉬라는 인물에게 많은 공감이 느껴졌다. 그가 커리어의 정점에 선 순간 그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환상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 평생 그를 좇아다닌다. 위대한 학자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한다. 병원과 가족의 도움으로 환상이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것을 겨우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를 괴롭힌 환상은 죽는 날까지 그를 따라다닌다.


영화 말미에서 존 내쉬는 그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노벨상을 받는다. 십수년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나는, 아마도, '와, 정신분열병을 이겨내고 노벨상까지 받았어'라고 느꼈을 것 같다. 솔직히 그 당시 영화를 본 인상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스물 세살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 성취만 눈에 들어오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은, 그가 받은 노벨상보다는, 자신을 평생 따라다니며 현실을 파괴하는 환상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료들과 삶을 나눠온 그 것이 더 위대해보인다. 노벨상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의 괴로움(어떤 면에서 환상이라고 부를수도 있는)을 이겨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기 때문이다.





존 내쉬를 비롯해 정신분열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눈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현실과 환상은 남들의 눈으로는 쉽게 구분이 되지만 본인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고, 그러다보면 영화속 정신과의사의 말처럼 환상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만히보면 정신분열병을 앓지 않는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어떤이에게는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또 어떤이에게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혹 다른이에게는 장미빛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면 환상을 겪는 이의 삶은 어느순간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우울하기만 한 세상', '불안하기만 한 세상' 혹은 '장미빛 미래만 펼쳐진 세상'으로 분리된다. 현실은 즐거우면서도 슬프고, 힘들면서도 뿌듯한, 그야말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공존하는 세상일텐데, 하나의 감정이나 신념이 지배하는 세상은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어떤 때에는 장미빛 환상에, 또 요즘은 우울과 불안, 무기력함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환상이 현실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오랜 기간 힘든 싸움을 해온, 그래서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자기 자신을 지켜낸 존 내쉬라는 사람에게서 위대함을 느낀다.


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존 내쉬는 그의 부인 알리사와 함께 2015년에 택시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몇년 후였는데, 아마도 그 때에는 영화에서처럼, 출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살고 계셨을 것이다. 2년전 불의의 사고로 힘든 인생을 마치셨다는데, 웬지 모를 눈물이 났다.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성취에, 평생 따라 다닌 괴로움을 잘 견뎌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늘에서는, 살아있는 동안 그를 괴롭혔던 여러가지로부터 벗어나 편안히 쉬셨으면 한다.